“먼저 나가” 후배소방관 등 떠밀어 내보내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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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소방서 김형성 소방장, 화재현장서 살신성인

“먼저 빨리 나가!”

김형성 소방장(43·사진)은 후배 소방관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다. 다급한 현장에서 잘 들리지 않을까 봐 후배 소방관의 등까지 떠밀었다. 이렇게 후배는 살려놓고 정작 자신은 화재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싸늘한 시신으로 가족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10시경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구산동 PVC 물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경기 일산소방서 장항 119안전센터 소속 김 소방장은 후배 대원과 함께 8분 만에 현장에 뛰어들었다. 화재가 난 건물은 플라스틱 등을 사용한 패널로 지어진 가건물이라 불이 쉽게 번지고 유독가스도 심했다. 김 소방장은 인화성 물질이 가득한 1층 잉크보관 창고 안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화염과 시커먼 연기로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유독가스 냄새와 강한 불길을 보고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뒤따라오던 후배 소방관 2명을 창고 밖으로 내보내고 홀로 남아 불길을 진압했다. 김모 소방교(25) 등 후배 2명은 먼저 빠져나오면서도 2도 화상을 입었을 정도로 불길이 강력했다. 두 후배는 12월 3일 배치돼 이날이 두 번째 현장이었다.

김 소방장은 뒤늦게 빠져나오려 했지만 이미 창고 전체로 번진 불이 철골 구조물까지 녹이면서 건물 전체가 무너져 변을 당했다. 그는 실종 7시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공장 본관에서 시작된 불은 오후 1시 반경 창고 4개 동 1800m²(약 545평·소방서 추정 재산 피해 1억8000만 원)를 모두 태우고 진화됐다.

1992년 9월 임용된 김 소방장은 올해로 20년차 베테랑 대원으로 어머니(79)와 부인(41) 딸(13) 아들(11)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소방서 관계자들은 “후배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맏형 같은 선배였다”라며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고 가장 나중에 나오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앞서 17일 오후 5시 반경에는 일산동구 덕이동의 한 제조공장 화재 현장에서 진화 과정을 촬영하던 같은 소방서 소속 의무소방대원 김상민 일방(22)이 2층에서 추락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김 일방은 척추 손상과 뇌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29일 오전 끝내 숨을 거뒀다.

소방대원 사이에서는 “인력 부족과 안전 지침 미비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상 화재 현장에는 베테랑 대원이 2인 1조로 투입된다. 그러나 김 소방장은 채 한 달도 안 된 신참 대원 2명과 함께 화재 현장에 들어갔다. 김 일방도 화재가 난 공장 안에서 촬영을 했지만 마스크와 안전모만 썼을 뿐 소방복은 입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서 관계자는 “촬영 담당은 안전 장비 착용 여부나 투입 지침 등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지역 소방대원 5950여 명 중 구급·구조대원을 제외한 화재 진압 대원은 3560여 명. 긴급 상황일 때는 행정 인력까지 현장에 배치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 34개 소방서 가운데 16개 소방서 62개 지역대는 여전히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나 홀로 지역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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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일산 문구공장 화재#소방장#김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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