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 철거하라” “우리도 살아야”… 상인, 노점상 3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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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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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자양시장서 무슨 일이…
민원하는 상인, 20년 노점상들 법과 밥사이…

서울 광진구 자양동 골목시장에서 해물탕집을 운영하는 윤재권(가명·48) 씨는 광진구에 3년간 민원(民願) 2500여 건을 제기했다. 시장 안팎 노점 철거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20년 넘게 한자리에서 장사해온 노점상은 민원 폭탄에 아우성이고 서울시와 광진구는 노점상의 생존권과 법 집행의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 ‘민원의 왕’ 윤재권 씨의 말

“저는 법치주의자입니다. 시민은 법을 지킬 때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점상은 무단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돈을 벌고 있습니다. 불법인데 왜 강제철거를 하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노점이 인도를 점거해 장사하면 보행자는 어디로 다니게 됩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내려가야 합니다. 이 때문에 교통체증도 발생하죠. 노점상 한 사람의 이익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노점상은 ‘이 자리에서만 수십 년째 장사한다’고 하지만 그게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돈을 벌었다는 것이니까요. 깡패와 다를 게 없습니다. 저는 서울 광진경찰서에 광진구 공무원 4명을 직무태만으로 고소했습니다. 제가 낸 민원 2500건을 3년 동안 접수하고도 노점을 강제철거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사고방식이 문제입니다. 불법을 뻔히 보고도 단속을 안 한다는 것은 법을 위반해도 좋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 20년 노점상 이찬행(가명·68) 씨의 말

“이보시게 윤 씨. 나라고 길거리에서 장사하고 싶겠나. 한여름에는 땀에 윗도리가 다 젖고 한겨울에는 길에서 꽁꽁 언 밥 먹어가며 장사했네. 자네는 가게 얻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나도 돈 있다면 그러고 싶지. 오전 9시에 나와 밤늦게까지 화장실만 다녀오면서 하루 10만 원 정도 팔아 손에 쥐는 돈이 1만5000원 남짓이네.

건넛집 생선 노점 박 씨 아줌마네도, 야채 노점 지은네도 다 마찬가지야. 여기서 1990년대부터 한푼 두푼 벌어가며 아이들을 가르쳤네.

우리도 불법인 것 아네. 어떻게든 주변에 피해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단속을 나와 자리 좁혀 달라고 하면 좁혀 주고 나이 어린 친구들이 불법이라며 행패 부려도 눈칫밥 먹듯 ‘네, 네’ 고개 숙이며 그렇게 살았고….

이 자리를 떠나 어디로 가란 말인가. 우리가 자네 가게로 찾아가 사정도, 설득도 해보고 답답한 마음에 화도 냈지만 자네는 들으려고도 안 하지 않았나. 자네가 조금만 이해해주면 안 되겠나. 꼭 그렇게 ‘법대로’를 외쳐야 마음이 편하겠는가.”

○ “해답이 없네요” 담당 공무원의 말


“솔직히 민원 때문에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수십 년간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시장이고 노점과 가게가 뒤섞여 강제철거는 현실적으로 힘듭니다. 설사 노점을 없앤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이용객이 불편을 겪을 수 있고 노점상들이 장기 집회라도 열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형평성 문제도 있어 일부만 철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노점을 옮길 공간도 없고, 거기에 필요한 예산도 없습니다.

법을 지키자고 민원 제기하는 윤 선생님 말이 맞지만 관할 구청 인력이나 재정도 감안해야 합니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해야 한다는 말뜻은 알겠지만 사람 사는 게 꼭 그렇습니까?”

○ 취재기자의 말

기자가 바라본 시장은 내일이라도 폭발할 폭탄 같았습니다. 이 말도, 저 말도 맞긴 한데 답이 없이 충돌하고 있으니 더 안타까웠습니다. 불황이 장기화되니 노점을 문제 삼는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한국도시연구소 홍인옥 박사는 “노점처럼 그동안 시민들의 암묵적 동의로 가능했던 일들이 시민의식의 향상과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일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런 사회 각 구성원 간 갈등을 해결할 묘안을 언제쯤 만들어낼지 걱정입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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