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한자도 경칭도 다 필요없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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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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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운 덕숭총림 경허선사 기념탑 간결미 화제

충남 서산시 천장암에 세워진 경허 대선사의 기념탑. 이번 기념탑의 제작으로 간결미와
강력한 메시지 전달 등을 특징으로 하는 ‘덕숭총림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천장암 제공
충남 서산시 천장암에 세워진 경허 대선사의 기념탑. 이번 기념탑의 제작으로 간결미와 강력한 메시지 전달 등을 특징으로 하는 ‘덕숭총림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천장암 제공
기념탑 앞면에는 한자를 배제하고 대선사 등의 호칭도 생략한 채 간결한 한글 서체로 ‘경허’라고만 새겼다. 뒷면에는 ‘일원상(一圓相)’과 그의 열반송의 한 구절을 넣었다. 스님은 입적하기 직전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쓴 뒤 붓에 먹을 듬뿍 묻혀 일원상을 그 밑에 그려 넣었다. ‘마음 달 홀로 둥글어/그 빛은 만상을 삼켰구나/빛과 경계가 다 공하였거늘/다시 이 무슨 물건인고?’

경허(1849∼1912) 대선사의 열반 100주년을 기념하는 탑 제막식과 세미나가 27일 오후 덕숭총림 수덕사의 말사인 충남 서산시 고북면 천장암에서 열렸다. 천장암은 선사가 깨달음을 얻은 뒤 18년 동안 수행하면서 숱한 화제를 남겼던 곳이다.

탑은 가로, 세로 1m의 지대석 위에 1.6m 높이의 사각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연꽃을 얹은 형태다. 다른 한 면에는 선사가 처음 공부하며 들었던 화두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가기 전에 말의 일이 온다)’가 적혀 있다.

이번 기념탑 건립으로 한자를 배제하고 간결미를 살리며 잠시 생각을 멈추고 명상에 젖게 하는 글귀를 새겨 넣는 탑의 제작 방식은 이제 ‘덕숭총림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1947년 제작한 만공(경허 스님의 제자)탑도 한글로 쓰였고 일원상을 상징하는 공(球)을 위에 두고 탑신에는 법훈(法訓)을 넣어 선사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게 했다. 덕숭총림 제3대 방장인 원담 선사의 기념탑도 같은 스타일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승탑(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탑)은 한자가 가득한 석종(石鍾)이나 불탑(佛塔)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념탑 추진위원장인 옹산 스님(천장암 회주)은 “경허 선사는 ‘탑이나 사찰 짓는 것만 우러르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고 있는 징조’라며 개탄했는데도 경허 선사의 기념탑을 세운 것은 선사께서 선불교 중흥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충남#수덕사#경허 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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