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키즈 “경제야 놀자”

  • 동아일보

■ 한국거래소, 울릉도 초등교 찾아 금융교실 열어

19일 경북 울릉군 천부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4∼6학년 어린이들이 한국거래소(KRX) 강사들이 알려준 ‘우리 집 살림 꾸리기’ 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울릉도=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19일 경북 울릉군 천부초등학교에서 이 학교 4∼6학년 어린이들이 한국거래소(KRX) 강사들이 알려준 ‘우리 집 살림 꾸리기’ 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울릉도=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전교생이 33명에 불과한 천부초등학교에 19일 낯선 육지 선생님들이 찾아왔다. 이 학교는 경북 울릉군 천부리에 있다. 울릉도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북쪽 끝 마을이다. 선생님들은 한국거래소(KRX) ‘행복돌봄 금융교실’ 강사들이다.

선생님의 질문에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드는 아이들로 교실은 시끌벅적해졌다. 여기저기서 휴대전화에 게임기, 장난감, 문구 등의 대답이 쏟아진다. 대도시 아이들이라면 저마다 하나씩은 갖고 있을 법한 ‘필수품’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와 손잡고 쇼핑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아이가 태반인 천부리 아이들에게는 꿈에 그리던 물건들이다.

“은행에 저축하고 싶은 친구들은 없나요?”

이어진 선생님의 질문에 교실은 금세 조용해졌다. 이 학교 16명의 4∼6학년생 가운데 통장이 있는 아이는 서너 명뿐이다. 천부리에는 농협 지점 외에 다른 은행을 찾아볼 수 없다.

KRX 국민행복재단은 4월부터 매주 토요일에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보드게임으로 경제와 금융을 배우는 ‘행복돌봄 금융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소비나 저축 경험이 적은 저소득층 및 맞벌이 가정 아이들의 ‘금융지식 디바이드(격차)’를 좁히자는 취지에서다. 울릉도에서 열린 ‘행복돌봄 금융교실’은 울릉도의 4개 초등학교(울릉·저동·현포·천부초등학교)의 요청으로 15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됐다.

돈을 벌기 위해 육지로 나간 엄마 대신에 할머니와 울릉도에 살고 있는 천부초등학교 5학년 민수(가명)와 절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지헌(가명)이는 ‘우리 집 살림 꾸리기’ 게임이 시작되자 게임용 화폐를 받아들고 눈이 둥그레졌다. ‘우리 집 살림 꾸리기’ 게임은 월급 200만 원을 받아 합리적인 소비와 저축, 펀드 투자, 보험 가입 등 금융활동을 통해 점수를 쌓는 게임. 하지만 용돈을 받아본 적도, 펀드 가입은 물론이고 저축을 해본 적도 없는 민수와 지헌이는 게임에 영 서툴렀다.

지헌이는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평소 사고 싶었던 게임기와 자전거, 스마트TV를 사느라 월급 200만 원을 거의 다 써버렸다. 민수 역시 “돈을 많이 벌어 문구도 사고 읍내 PC방도 가보고 싶다”며 펀드 투자에 열을 올렸다. 펀드에만 100만 원을 투자한 민수는 게임 초반 2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게임 막바지에 ‘자전거 사고’ 카드를 받아들어 투자 수익금을 모두 치료비에 써버렸다. 보험에 가입했으면 치료비로 1만 원만 내면 됐지만 여유 자금을 모두 투자에 써버린 탓이었다. 민수는 “무조건 아끼면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투자와 보험 가입, 소비를 적절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부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모미라 교사(41·여)는 “이곳은 아이들이 소비나 저축 등 경제관념을 갖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지루할 수 있는 경제·금융을 게임을 통해 배우다보니 아이들의 반응이 열광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농촌이나 오지 아이들과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경제·금융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릴 때부터 부모나 학교로부터 소비나 저축, 투자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적은 아이들은 커서도 균형 잡힌 경제활동을 하기 어려워 부모의 소득격차가 대물림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재원 한양대 교수(경제학부)는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금융 교육은 소득계층에 따른 금융지식 디바이드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경제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방법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울릉도=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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