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까지 성매매 전단지… 주워서 카드놀이하는 아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1일 03시 00분


■ 학원가-전철역뿐 아니라 주택가까지 무차별 살포

“와! 내가 7635니까 너보다 숫자 더 크다. 내가 이겼다!” “아, 6490이면 이길 줄 알았는데….”

성매매 피해여성 지원단체인 ‘다시함께’의 고명진 센터장은 놀이터에서 카드놀이를 하던 초등학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에 있는 카드는 성매매 알선 전단. 야릇한 그림과 함께 기재된 전화번호의 끝 네 자리 숫자를 두고 아이들이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이 전단을 어떻게 구했느냐고 물었다. “자동차에 꽂혀 있었어요.” “집 앞에 있었어요.” “학교 가는 길에 뿌려져 있었어요.” 사진 속의 여성이 예뻐 음란 전단을 ‘공주 카드’ 쯤으로 생각하는 여자 초등학생도 꽤 많다고 고 센터장은 전했다.

이런 음란물 전단은 서울의 강남역, 선릉역, 건대입구역, 신촌역 등 인파가 많고 학원이 밀집된 지역에서 흔하게 보인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9일과 10일 오후 현장을 찾았더니 전철역 주변은 물론이고 초중고교생이 오가는 학원 건물 주변에서 이런 전단이 무차별로 살포되고 있었다. ‘○○ 출장 마사지, 여대생 1:1 데이트, 24시간 대기, 오피스 마사지….’ 선정적인 문구와 함께 휴대전화 번호가 크게 인쇄돼 있었다.

학원에서 공부를 마친 청소년들은 전단의 여자 사진에 눈을 돌렸다. 대부분은 잠시 보고 바닥에 버리지만 몇몇은 주머니에 넣었다. 환경미화원 A 씨는 “보는 즉시 수거하지만 금세 새 전단이 쌓인다. 아이들이 다니는 길에,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가장 난처한 쪽은 부모들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김미숙 씨(45·서울 강남구)는 “아이들이 길에서 주운 전단을 보여주면서 내용을 물어봤다. 얼른 뺏기는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외국인들도 많이 다니는 거리인데 부끄럽다”고 말했다.

음란물 전단을 뿌리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2004년 생긴 청소년보호법이 이렇게 규정하고 있지만 소용이 없다. 이 전단에 끌린 고객에게서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채널A 영상] 음란물 유통경로 다 차단해도 ‘이것’ 못 막으면…

전단의 내용은 단속을 피해 점점 교묘하게 바뀌는 중이다. 성매매를 뜻하는 직접적인 표현 대신 ‘데이트’나 ‘마사지’처럼 우회적인 단어를 넣는다. 또 나체 사진 대신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 사진을 쓴다. 최근에는 ‘오피스’ ‘파트너’ ‘짝’과 같은 단어만 전화번호와 함께 기재한다.

경찰과 여성가족부는 1주일에 4회 이상 현장에 나가지만 모든 전단을 수거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여성부의 안상현 청소년보호점검팀장은 “앞으로는 전단 제작업자, 성매매 알선업주가 어떤 처벌을 받는지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정책 마련 및 단속에 참고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이형관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학과 4학년  
#음란 전단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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