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8시경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에서 고함이 들렸다. 굳게 닫힌 문과 창문 사이로 터져 나온 소음을 들은 주민들은 “부부 싸움이 심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방 안 사정은 긴박했다. 막걸리 3병을 마신 남편 홍모 씨(67)는 20cm 길이의 칼을 손에 쥐고 중국동포인 아내 이모 씨(57·여)를 위협했다. “죽이겠다”는 말과 함께. 홍 씨의 눈은 살기로 희번덕거렸다.
신고를 받은 지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잠긴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칼을 내려놓으라”는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경찰은 바로 창문의 방범창을 뜯기 시작했다. 2분도 안 돼 창을 뜯고 경찰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내 이 씨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남편 홍 씨는 칼을 들고 경찰에 저항하다 경찰봉을 맞고 제압됐다. 오른쪽 쇄골 밑을 칼로 관통당한 이 씨는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 씨의 손과 팔에는 남편의 칼을 필사적으로 막는 과정에서 생긴 상처가 가득했다.
2005년 9월 결혼한 두 사람의 생계는 식당일을 하는 아내가 책임졌다. 한국인인 남편은 직업도 없이 늘 술에 취해 살았다. 오히려 술값을 더 벌어 오라며 자주 행패를 부렸다. 한국인과 결혼해 2년 이상 거주하거나 혼인한 지 3년이 경과하고 1년 이상 체류하면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있지만 이 과정에 필요한 남편의 동의를 홍 씨는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바람에 이 씨는 결혼한 지 7년이 지나도록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다. 이 씨는 이혼도 고민했지만 추방될까 봐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웃 주민들은 “홍 씨가 부인을 때릴 때마다 밀입국 중국인이란 거짓말을 주변에 퍼뜨리며 협박했다”고 전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국적을 빌미로 가정폭력을 일삼거나 돈을 요구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며 “제도적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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