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중은 4월 말 공개된 학교폭력 전수 실태조사에서 재학생의 37.8%가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설문지 회수율이 10% 이상인 전국 중학교 가운데 3번째로 높았다. 참담한 결과였다. 지영호 교장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사진판을 설치했다가 정부 발표를 계기로 더욱 위기의식을 느꼈다. 교장이 학생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얼굴까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진판을 매일 점검하는 중이다.
○ 실태조사 이후 강하게 대응
봉화중은 학교폭력과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더이상 숨기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와는 별도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피해 상황과 폭력 서클 실태를 파악했다. 폭력을 당하거나 금품을 빼앗긴 내용과 목격 상황을 △가해자 △피해 내용 △일시 △장소를 포함해 구체적으로 적어 내도록 했다. 또 폭력 서클 조직의 △이름 △관련 학생 △주동 학생 △비행 사실을 쓰라고 했다.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는 학교폭력 신고전화 ‘해피콜’도 만들었다. 전화를 걸어도 연락처가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줬다. 괴롭힘이나 폭력, 따돌림을 있는 그대로 신고하도록 만들자는 취지였다. 5월까지 해피콜에 접수된 신고전화는 189건이나 됐다. 신고내용은 담임교사에게 전달해 학생지도에 활용하도록 했다.
독특한 원칙도 만들었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하거나 대들어도 해당 교사는 직접 대응하지 않도록 했다. 감정적인 대응으로 상황을 악화시키는 대신 규정에 따라 대처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교사는 “너 지금 욕했지? 친구들도 봤지?”라고 확인하고 학생지도 전담 직원인 배움터 지킴이에게 학생을 인계한다. 처벌은 간단치 않다. 학부모를 소환하고 벌점을 주거나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선도위원회를 연다.
효과는 서서히 나타났다. 지난해에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폭대위)를 15회 열어 51명을 징계했지만 올해는 7월까지 4번의 회의를 통해 17명만 징계했다. 폭력 자체가 줄어든 결과다. 특히 지난해까지 강제전학이 3명, 권고전학이 6명이었지만 올해는 전혀 없다.
○ 후속조치 어려움 겪는 학교들
정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가 공개된 지 10주가 지났다. 본보 취재진이 학교폭력 피해율이 가장 높았던 전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60곳을 취재한 결과, 봉화중처럼 후속대책을 마련해서 효과를 거둔 곳은 일부에 그쳤다.
예를 들어 충남 A중은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30%가량이 돈을 빼앗기고 맞는 등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대답했던 곳. 이 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따라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피해학생을 1명도 찾아내지 못했다. 생활지도담당 교사는 “피해자를 밝힐 방법이 없어 결국 없던 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전남 B중은 “피해학생들이 지목한 가해학생이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지금은 다른 학교 학생이라 우리가 조치할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경남 C중 교사도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올해 2월에 고등학교로 진학한 졸업생이어서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을 모르는 정부의 대책에 분통을 터뜨리는 학교도 적지 않다. 전남 D중은 토요일마다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 호응도가 높았다. 정부가 학교폭력 대책의 하나로 스포츠 프로그램을 하라는 지시와 함께 예산을 내려 보내자 어쩔 수 없이 응했다. 이 학교 교사는 “스포츠 프로그램으로 바꾼 뒤 참여율이 너무 낮아져서 억지로 학생을 모으고 있다”며 “정부가 일률적인 대책을 일방적으로 지시하지 말고 학교실정을 감안해 만든 대책을 시행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E중 교장은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개입하면서 처리 상황을 교사에게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는다. 학교가 사건을 우선 해결하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