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인 물색→2억담보 7억으로 둔갑→보름만에 5억 불법대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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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주저축銀 ‘금융채무불이행자에 불법대출 수법’ 살펴보니

경찰이 2월 수사한 한주저축은행의 불법대출은 임원부터 팀장, 직원이 역할을 분담한 ‘총체적 비리’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모 여신담당 이사는 지난해 1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가 양모 씨(32)로부터 “사업자금으로 5억 원 정도 대출받고 싶다”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양 씨는 한주 측으로부터 이전에 대출받은 5억 원의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해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신분이었다.

이 이사는 이모 여신 팀장(45)에게 허위 담보 제공자와 차명 대출인을 물색하라고 지시했다. 이 팀장은 수 백억 원 대의 불법 대출을 주도한 혐의로 9일 저축은행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에 구속된 핵심 인물이다. 이 팀장은 허위 담보 제공자 박모 씨에게 사례비 2000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서울 은평구 증산동 시가 2억여 원의 단독주택을 7억 원짜리로 둔갑시킨 허위 감정평가서를 작성했다. 이 팀장은 이후 차명 대출인인 또 다른 박모 씨에게 “본인 명의로 들어온 대출금을 양 씨에게 넘겨주면 사례비로 1000만 원을 주겠다”며 유인해 박 씨 명의의 통장과 현금카드, 도장까지 넘겨받아 담당 부서에 제공했다. 대출 서류 기안을 담당한 직원 국모 씨는 올해 1월 차명 대출인 박 씨가 정상적인 대출신청을 한 것처럼 여신거래약정서, 근저당설정계약서 등 대출 관련 서류를 전부 허위로 작성했다.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결국 한주저축은행은 보름 만인 1월 12일 박 씨 명의의 계좌로 ‘가짜 대출금’ 5억 원을 송금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임순 대표를 비롯한 저축은행 관계자 5명은 대출 신청자와 담보 제공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서류를 결재하는 등 암묵적으로 불법대출을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통장에 입금된 돈이 불법 대출 자금임을 눈치 챈 차명 대출인 박 씨는 1월 14일 5억 원을 챙겨 잠적했다. 대출 의뢰인 양 씨는 박 씨와 연락이 두절되자 이 이사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이 이사는 은행 연합 전산망으로 박 씨의 거래정보를 무단 조회했다. 5억 원 중 3억 원이 박 씨의 후배 김모 씨와 송모 씨의 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금세 드러났다. 이 이사는 이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양 씨에게 건넸고 양 씨는 서울 용산구 김 씨의 집에 조직폭력배 금모 씨(28) 등을 보내 “훔쳐간 돈을 내놓으라”며 가족들을 협박한 끝에 대출금 3억 원을 회수했다.

경찰은 2월 “이태원 주택가에서 조직폭력배들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금 씨가 회수한 자금이 저축은행의 불법대출 자금임을 확인한 뒤 수사를 확대했다.

경찰 관계자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이후 이 이사가 166억 원을 갖고 잠적하자 김 대표가 오히려 ‘경찰이 2월 수사할 때 구속시켰으면 이럴 일 없지 않았느냐’고 한탄했다”며 “변호인단을 선임해 영장 기각에 힘썼던 피의자에게 그런 말을 들어 황당했다”고 밝혔다.

[채널A 영상]한주저축은행 간부, ‘가짜 통장’으로 160억 사기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저축은행 영업정지#금융#은행#한주저축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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