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끔 어머니와 누나들과 휴대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며 안부를 전한다고 말했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래 알고 있던 그의 모습은 어쩌면 그의 말대로 편견에 불과했을까. 기자는 ‘청각장애를 딛고 일어선 디자이너’를 인터뷰하러 간 지 30분도 채 안 돼 ‘꿈 많은 젊은 디자이너’가 앞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나는 꿈 많은 디자이너다!”
서울시와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이 공동 주최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패션 디자이너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프런코)’ 시즌4에서는 단연 화제를 모으며 깜짝 스타가 된 출연자가 한 명 있다. 모델 뺨치게 잘생긴 얼굴과 세련된 스타일 감각에 다른 도전자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씨까지 보여준 강성도 씨(28)다. 그를 만나기 위해 4월 27일 서울 중구 신당동 패션창작스튜디오를 찾았다.
미국 유명 패션스쿨 파슨스를 졸업한 디자이너 강 씨가 사람들에게 주목받은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청각장애 때문이었다. 어수룩하게 한국말을 쓰는 그를 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외국에 오래 살아서 그런가’라고 짐작했지만 그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에게 철저하게 교육 받은 덕에 수화를 쓰지 않고도 거의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보청기를 끼면 실낱같은 소리가 들려와 말하는 이의 입 모양과 조합해 알아듣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대신 열 살 때부터 매일 5, 6시간씩 함께 발음 내는 연습을 했다.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결과 그는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모두 전달할 수 있다. 덕분에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를 들었던 어머니와 누나들과는 전화로 대화할 수 있다.
“아버지는 발음이 너무 거칠어서 알아듣기 어려워요. 사실 아버지랑은 전화로 얘기를 많이 안 하기도 하고요.” 강 씨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동안 빗발치는 인터뷰를 모두 고사했다. 청각장애가 부각되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깨고 디자이너로서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프런코에 출연한 강 씨는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장애랑 연결되는 똑같은 질문만 했다”며 “장애인이기에 앞서 나는 꿈 많은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 탈락은 탈락일 뿐, 출발선 앞에 서다
그는 애초 우승 후보로 손꼽혔지만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설 수 있는 상위 3명에 들지 못하고 탈락했다. 탈락 이후 최근까지 강 씨를 주인공으로 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촬영하느라 개인 브랜드를 시작하기 위한 작업은 손도 못 댔다. 촬영을 마치자마자 강 씨는 서울시가 신진 디자이너 양성을 위해 설립한 패션창작스튜디오에 6기 디자이너로 입주를 신청했다.
강 씨는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녹여내 9월에는 자신의 브랜드 ‘anduette’를 선보일 계획이다. 자신의 영어이름인 ‘Andee’와 실루엣(silhouette)을 합친 뜻이다. 그는 존경하는 디자이너로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비 필로를 꼽으며 “‘나와 내 친구들이 사고 싶은 옷을 만든다’는 그녀의 패션철학처럼 나도 한국 여자들을 위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싶다”며 “10년 뒤에는 뉴욕과 한국에서 모두 사랑받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이 자리에 서게 도와준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걸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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