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경주 시내를 빠져나와 차를 타고 좁은 2차도로를 한 시간 정도 달리자 확 트인 바닷가가 나타났다. 수중 ‘능(陵)’으로 유명한 문무왕의 ‘해중왕릉(海中王陵)’이다. 횟집과 해변 사이의 좁은 도로를 따라 5분 정도 더 달리자 인적이 드문 산 중턱에 건설 중인 ‘월성원자력환경관리센터’가 나타났다. 이곳은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이 들어설 땅이다. 원자력 발전소나 병원, 연구소에서 사용한 작업복이나 주사기, 시약병 등의 중·저준위 폐기물을 보관할 예정이다. 현재 공정 87%를 기록하고 있는 방폐장 공사현장을 15일 오후 찾아갔다.》 ○ 지하 암반에 동굴 뚫고 5∼7m마다 철문 설치
국내 21기의 원전에서는 매년 200L짜리 드럼통 2000개 분량의 중·저준위 폐기물이 나온다. 현재는 원전 내 저장소에 보관 중이지만 방폐장이 2014년 6월 완공되면 모두 이곳으로 옮길 계획이다. 세계 주요 원전 운영 국가들은 각국의 자연환경에 맞는 처분방식을 채택해 중·저준위 폐기물을 보관한다. 방폐장 형식은 크게 ‘천층처분’과 ‘동굴처분’ 방식이 있다. 천층처분 방식은 땅을 얕게 판 뒤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방폐물을 처분하는 것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이 이를 채택했다. 경주에 짓고 있는 처분장은 동굴처분 방식으로 지하 암반에 인위적인 동굴을 만들어 방폐물을 관리한다. 이미 10년 이상 중·저준위 폐기물을 보관하고 있는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방식이다.
직원의 안내로 처음 찾은 곳은 방사성 폐기물이 담긴 드럼통 1000여 개가 저장되어 있는 ‘인수저장건물’(사진). 울진 월성 원전의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가 꽉 차 2010년 12월 이곳으로 옮겨왔다.
건물로 들어서자 5∼7m를 이동할 때마다 두께 15cm가량의 두꺼운 철문을 계속 지나야했다. 방사성 물질 누출과 같은 비상사태 때 건물을 차단하기 위한 시설이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자 두꺼운 유리 창문 안으로 드럼통 8개가 담긴 운반용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곳을 관리하고 있는 오행엽 차장은 “인수저장건물은 두께 83cm의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다”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건물 곳곳은 물론 인근 초등학교에도 방사선 검출기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이곳으로 옮겨온 방폐물은 빠짐없이 전수검사를 거친다. 방사선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하면 원래의 원전으로 되돌려보낸다.
○ 4중 보호막으로 ‘철저 관리’
임시로 저장 중인 중·저준위 방폐물은 지하의 ‘사일로’가 완공되면 모두 옮겨 보관한다. 한 개의 사일로에는 약 10만 개의 드럼통을 보관할 수 있다. 이곳 방폐장에는 현재 6개의 사일로가 건설 중이다.
사일로를 보기 위해 차를 타고 지름 7m 정도 되는 반원 모양의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땅 속으로 내려간 지 10분 정도 지나자 터널 양 옆으로 널따란 사일로 공간이 나타났다. 사일로는 해수면 기준으로 80m 지하의 땅속에 있는 버섯 모양의 동굴이다. 높이 50m, 지름 30m에 달하는 거대한 창고다. 사일로를 다 파고 난 뒤에는 드럼통이 보관되는 기둥 주변을 두께 1∼2m의 콘크리트 방벽으로 다시 차단한다. 지하수가 유입되거나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차수막도 설치한다. 방폐장이 완공되면 60년간 운영한 뒤 사일로 내부를 차쇄석과 콘크리트로 채운 후 밀봉한다.
홍광표 본부장은 “사일로로 들어온 방사성 폐기물은 1차 드럼통, 2차 처분 용기, 3차 콘크리트 방벽, 4차로 단단한 화강암으로 된 자연 암반으로 둘러싸여 방사성 물질 누출 걱정이 없다”며 “원전과 마찬가지로 리히터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 안전을 바탕으로 친환경 테마파크
현재 경주 방폐장 인근 지역 210만 m2의 터에는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환경친화단지 테마파크’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방폐장보다 1년 앞선 2013년 7월 완공되는 테마파크는 크게 자유관람 공간, 방문객센터, 통제관람 공간으로 나뉘며 인조잔디구장과 녹차밭, 전망대 등이 조성된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장인 생태 관찰대와 소리 터널 등도 들어설 예정.
송명재 이사장은 “경주 방폐장 인근 지역은 일반인의 연간 허용 방사선량의 100분의 1로 관리되기 때문에 안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인근 유적지와 함께 새로운 친환경 명소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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