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자본주의’에서 길을 찾다]<11>화성 LH 임대단지의 희망찾기

  • Array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주민들 모여 비누-가방 생산… “임대주택 살맛 나네요”

7일 경기 화성시 동탄주공7단지에 있는 LH 마을형 사회적기업 ‘꼬마’ 작업장에서 마을 주민인 직원들이 비누를 만들고 있다. 판매 수익금은 단지 내 경로당과 공부방 지원 등 주민 복지를 위해 쓰인다. 화성=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7일 경기 화성시 동탄주공7단지에 있는 LH 마을형 사회적기업 ‘꼬마’ 작업장에서 마을 주민인 직원들이 비누를 만들고 있다. 판매 수익금은 단지 내 경로당과 공부방 지원 등 주민 복지를 위해 쓰인다. 화성=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작은 비누 한 장으로 주민 일자리가 생기고 마을 복지도 좋아졌어요. 비누가 효자 노릇하는 셈이죠.”

6일 찾은 경기 화성시 동탄주공7단지 주민공동체 사무실. 장추자 팀장(67·여)은 자신이 만든 ‘EM(유용미생물)’ 비누를 손에 들고 소녀처럼 웃었다. 장 팀장은 지난해 11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원해 설립한 마을형 사회적기업 ‘꼬마(commar)’의 늦깎이 취업자다.

그는 하루 5시간씩 ‘꼬마’에서 비누를 만든다. 급여는 시간당 5000원에 불과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큰 보람을 느낀다. 장 팀장은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인데 내가 만든 비누 판매금이 입주민 복지기금 등으로 쓰여 자부심도 생긴다”며 뿌듯해했다.

현재 ‘꼬마’에서 일하는 주공7단지 주민은 10명. 모두 주부와 노인이다. 이들은 직원이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임원 역할도 한다. 출퇴근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로 정했다. 아이와 남편들이 집을 비운 자투리시간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꼬마는 EM 비누 외에 폐현수막을 재활용해 장바구니와 가방을 만들고, 사무실 앞과 단지 내 경로당에 판매대를 설치해 판매도 직접 한다. 물건은 입주자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은행 직원 등이 사갈 정도로 인기가 있다. 수익금은 아파트 경로당과 어린이공부방 운영비 등으로 쓰인다.

꼬마는 LH가 공공임대아파트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추진하는 다목적 프로젝트인 ‘마을형 사회적기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마을형 사회적기업은 임대주택단지 입주민이 중심이 돼 소규모 물품 및 먹을거리를 제조, 판매하거나 놀이방 등의 운영을 통해 작지만 소중한 수익을 창출한다. 입주민들이 일을 통해 공동체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또 다른 소득이다.

LH는 2010년 경기 시흥시 능곡과 충북 청주시 성화 가경지구, 대구 율하지구 등 3곳에서 시범사업을 벌였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3곳에서 모두 67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노약자 등 취약계층 대상 급식 제공, 마을건강증진센터 위탁 운영, 지역도서관 운영, 지역공부방 운영 등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했다.

특히 율하지구의 ‘동구행복 네트워크’는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따내는 성과를 이뤄냈다. 고용부 인증이 있으면 인건비 지원, 세금 감면 등 혜택 외에도 본격적인 기업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경영컨설팅 지원까지 받는다. 또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각종 구매 및 용역 입찰 시 우선권이 주어진다.

동구행복네트워크가 벌인 사업을 보면 LH가 추구하는 마을형 사회적기업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이 회사는 율하지구 국민임대5단지를 거점으로 친환경 농산물 판매 및 취약계층 대상 급식 등을 전담하는 ‘웰도락 사업’, 맞벌이부부 아동과 장애인 등을 돌보는 ‘안심 맘 사업’, 청소년 노인 등 문화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질 높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반 사업’을 추진했다. 지금까지 20명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2000여 명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LH 마을형 사회적기업 설립지원단 최준 단장은 “앞으로 2016년까지 꼬마와 같은 기업을 전국적으로 30여 개 설립할 계획”이라며 “임대아파트의 공공성을 살릴 수 있는 마을형 사회적기업이 전국 아파트단지에 더 많이 세워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화성=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박세환 인턴기자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 4학년  

▼ 국민 10명중 1명 ‘하우스 푸어’… 민간자본 활용 임대주택 늘려야 ▼

무리하게 집을 샀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하우스 푸어(House Poor)’는 2010년 기준으로 최대 156만9000가구로 추정된다. 한국 전체 인구의 11%에 해당하는 약 549만 명이 하우스 푸어인 셈이다. 이들이 매달 은행에 갚는 대출원금과 이자는 가처분소득의 42%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하우스 푸어보다 더 딱한 이들은 껑충 뛰는 전세금을 낼 길이 없어 수천만 원씩 대출을 받은 ‘렌트 푸어(Rent Poor)’다.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아직 없지만 무주택이면서 영세서민이거나 사회초년생, 신혼부부들이 렌트 푸어로 고통받고 있다. 하우스 푸어나 렌트 푸어에게 집은 ‘행복한 안식처’가 될 수 없다. 주택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공존’을 기대하기 어렵다.

○ 임대주택 재고물량 늘리자

전문가들은 주택이 서민들에게 휴식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안식처로서의 제 기능을 회복하려면 주택정책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세서민이 주거비 부담을 느끼지 않고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희망의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전문가들은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손질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역대 정부의 임대주택 정책은 대부분 공급 확대에 매달렸다. 절대적으로 양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생색내기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용지가 부족한 데다 재원 마련도 쉽지 않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여러 조건을 감안할 때 1년에 정부가 주도해 지을 수 있는 주택은 최대 15만 채(사업 승인 기준) 정도”라며 “현 정부가 2018년까지 180만 채의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말할 정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측은 “현행 방식으로 임대주택을 짓는다면 1채에 9300만 원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임대주택 재고물량을 확보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민간자본의 임대주택시장 유입도 촉진해야 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임대 건설자금의 1채 지원한도액을 건축비 상승요인 등을 반영해 상향 조정하고, 국민주택기금 대출금리를 2%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주택 보유자로서 매입임대주택 사업자로 등록하면 임대주택 기간에 따라 주택개량자금을 지원하거나 재산세를 감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천현숙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정 조건을 갖춘 저소득 서민들이 입주할 경우 임대주택사업자에게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주택 바우처(VOUCHER)’를 지급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 임대주택 관리시스템을 구축하자


공공임대주택은 그동안 LH, SH공사,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공급해 왔다. 영구임대, 50년 임대, 국민임대, 임대형보금자리주택, 장기전세 등으로 명칭도 그때그때 달랐다. 문제는 이런 임대주택의 입주자 조건과 임대료 산정방식 등이 모두 제각각으로 달랐다는 점이다.

영구임대는 전국을 5개 등급으로 나눠 등급에 따라 임대료를 정하고, 국민임대는 건설원가를 토대로 주변 시세의 일정비율에 맞춰 산출하는 식이다. 그 결과 임대주택 유형에 따라, 지역에 따라 형평성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임대주택들이 어디에 있는지, 언제 입주 가능한지를 알 수 있는 정보 전달 시스템도 없다. 공공임대주택에 살고 있다가 자녀가 성장하거나, 식구수가 늘거나, 직장을 옮기는 등의 이유로 다른 임대주택으로 옮기고 싶어도 이동할 수도 없다.

짓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지어진 임대주택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결과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영세서민에게 공공임대주택 입주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영구임대주택에만 적용하고 있는 ‘입주대기자(Waiting list) 제도’를 모든 임대주택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입주대기자 제도를 통해 자신이 희망하는 지역의 아파트에 등록하도록 하고, 빈집이 생기면 입주자 선정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 임대주택단지를 생활터전으로 바꾸자


그동안 임대주택 정책은 건설 공급에 초점을 맞춘 탓에 별다른 서비스 없이 단순한 잠자리 제공에만 머물렀다. 그 결과 입주민들은 거주 단지에 대한 소속감 없어 관리에 소홀했고, 임대주택이 들어선 곳은 예외 없이 슬럼화의 과정을 거쳤다. 또 일부 임대주택이 들어선 곳은 우범지대가 됐다. 임대주택 건설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땅값,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 시위를 벌이곤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임대주택 정책은 단순한 잠자리 제공 차원에 머물지 않고 일자리와 의료, 교육 등과 같은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임대주택을 생활의 터전으로 만들어줌으로써 입주민들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관리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자는 것이다. LH가 추진하고 있는 ‘마을형 사회적기업’에 기대가 큰 이유이기도 하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