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인 순정 악용한 꽃뱀 동창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7일 19시 42분


30세 가까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지체장애인 남성의 순정을 악용해 장애인 근로 수당과 자동차, 대출금 등 수천만 원 상당의 돈을 가로챈 초등학교 동창 여성이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지체 장애 3급인 김모 씨(34·무직)의 어머니 최모 씨(56)는 6년간 돈을 뜯기며 이용당하는 아들을 지켜보다 못해 이 여성을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7일 서울 서부경찰서와 최 씨에 따르면 백모 씨(34·무직·여)는 2006년 동창·친구 찾기 전문사이트를 통해 김 씨에게 "너 김OO 아니니? 나는 널 기억하는데 너도 날 기억하고 있니?" 등의 내용을 담은 쪽지를 보냈다. 김 씨는 지체 장애 탓에 백 씨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다정한 말이 담겨 있는 쪽지가 싫지 않았다. 백 씨는 이런 김 씨에게 "보고 싶었다"는 등의 말을 건네며 김 씨에게 접근했고 만남이 시작됐다.

2006년 당시 28세였지만 장애 탓에 연애 한 번 못해본 김 씨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백 씨에게 곧 호감을 느꼈다. 백 씨는 김 씨의 어머니 최 씨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거의 매일 드나들며 청소를 하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등 며느리 역할까지 톡톡히 하면서 모자의 환심을 샀다.

그러나 백 씨가 장애가 있는 김 씨에게 접근한 의도는 따로 있었다. 이렇다할 직업이 없어 생활비가 부족했던 백 씨는 김 씨를 이용해 용돈이라도 벌어볼 생각이었다. 백 씨는 김 씨가 어머니에게 용돈 5만~10만 원을 받은 뒤 자신을 만나러 나오면 이 돈을 가로챘다. 지난해 3월에는 김 씨에게 2600만 원 상당의 중형차를 할부로 사게 한 뒤 이를 한 달 만에 되파는 수법으로 2500만 원을 챙겼다. 또 김 씨 명의로 저축은행에서 500만 원을 대출받게 해 이 역시 빼앗았다. 최 씨는 혹시 아들 인생에 해가 될까봐 법원에 금치산자(禁治産者) 지정 청구를 하지 않아 대출과 각종 계약이 가능했다. 금치산자란 자기 행위의 결과를 판단할 능력이 없어 후견인, 검사 등의 청구에 따라 가정 법원에서 자기 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할 수 없도록 선고를 받은 자를 말한다. 백 씨는 또 김 씨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알선해 준 옷 공장 등에서 한 달 내내 일해서 받은 월급 70만 원도 고스란히 가져가버렸다.

최 씨는 최근 아들에게 매일같이 날아오는 각종 빚 독촉장을 받아본 뒤에야 이런 사실을 알고 백 씨를 고소했다. 백 씨는 경찰 조사에서 "김 씨와 자주 만나고 같이 다닌 건 맞지만 이용한 적은 없다"고 혐의 강하게 부인했다. 최 씨는 "2004년에도 노래방 손님으로 온 여성이 아들에게 접근해 아들 명의로 카드를 만들게 한 뒤 그 카드로 1000만 원 상당의 성형수술을 하고나서 달아난 적이 있다"며 "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 마음에 혹시라도 백 씨가 못난 아들 배필이 돼줄까 해 딸처럼 대해줬는데 자꾸 이런 일이 생겨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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