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박은수 민주당(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병원의 비급여 진료비가 적정한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직권’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른바 ‘비급여 진료비 직권확인제’다.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에 한해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을 비급여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이 당장 본격적으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는 않지만 의료계의 반발은 벌써 시작됐다. 최근 김한나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의료정책포럼 기고문에서 “비급여 진료는 환자와 의료기관의 사적계약이다. 국가의 관여는 과도한 규제일 뿐 아니라 민법상 계약의 기본법리에도 위배될 수 있다”며 이 제도를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지만 제도에 찬성하는 눈치다. 복지부 관계자는 “비급여 진료와 급여 진료가 혼재된 현재 의료구조상 모든 비급여 진료를 환자와 의료기관의 사적인 계약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 비급여 실체 알아야 해법도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일부 비급여 진료는 ‘치료’보다 ‘상술’에 가깝다. 이런 진료는 환자의 주머니만 축내는 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도 악화시킨다”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비 직권확인제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비급여 진료가 얼마에 행해지며, 그 가격은 적정한지 등 비급여 진료의 ‘실체’를 파악해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복지부는 실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라면 병원은 비용의 30%가량을 환자에게 받고 나머지 70%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해 받는다. 이 과정에서 급여 정보가 모두 취합된다. 그러나 병원이 비급여 진료로 거둔 수입을 공단에 보고하거나 신고할 의무는 없다.
심평원도 비슷한 상황이다. 심평원은 38개 수술별로 전국 병원의 평균진료비와 입원일수를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위절제술로 A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B병원에 입원했을 때 진료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알려준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급여(본인부담금+공단부담금) 부분만 알려줄 뿐이다. 상급병실 이용료나 비급여 시술, 약제비 정보는 없다. ○ 신포괄수가제, 대안 될까
지금은 의사들의 진료행위 하나하나에 모두 진료비가 부과된다. 이를 ‘행위별수가제도’라고 부른다. 비급여 진료가 많아지면 환자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2002년부터 복지부는 이에 맞서 ‘포괄수가제’를 추진했다. 의사의 진료량과 관계없이 질환별로 미리 책정해 놓은 진료비만 내는 제도다. 비급여 진료가 많아도 환자가 돈을 더 낼 필요는 없다.
포괄수가제가 과잉의료와 비급여 진료비, 건강보험 지출을 모두 줄일 수 있다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맹장수술을 비롯한 7개 질병을 대상으로 2002∼2010년 시범사업을 벌인 결과 환자 진료비 부담률이 38.3%에서 30.7%로 줄었다. 이 기간 7대 질병의 연평균 진료비 증가율(2.7%)도 나머지 질병 평균(3.3%)보다 0.6%포인트 낮았다.
다만 암과 같은 복잡한 질환에 이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복지부는 행위별수가제와 포괄수가제를 혼합한 ‘신(新)포괄수가제’를 만들어 놓고 2009년부터 다시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7월 기준으로 항암치료, 뇌종양을 포함해 553개 질병이 대상이다.
새로운 제도의 결과는 미지수다. 잠정적으로 환자 부담이 7.9% 줄었다는 보고가 나왔지만 시범사업 병원이 4곳밖에 되지 않아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병원들의 반발이 커 당장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 ○ 건보개혁과 동시 진행해야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발간한 ‘2009년 국민의료비’ 보고서에서 “1980년도 국민의료비는 1조4000여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3.7%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9년 국민의료비(73조7000여억 원)는 GDP 대비 6.9%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국민의료비 상승을 유발하는 주원인 가운데 하나인 비급여 진료를 건강보험 틀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며 “우선 재정 확충 방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소득의 5%대인 현재 건강보험료를 7%대로 인상할 것을 제안했다.
문창진 차의과대 보건복지대학원장도 “보험료를 적게 걷고, 건강보험 혜택을 많이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우리 사회가 공공보험으로 갈 것인지, 공공보험과 민간보험을 혼합한 체제로 갈 것인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급여 진료의 개혁을 위해서는 의료시스템 전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 원장은 이와 별도로 의사들의 진료량을 줄이는 방법도 제안했다. 진료행위를 줄이고 치료효과를 높인 의사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는 ‘P4P(Pay For Performance)’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
비급여 정보를 낱낱이 공개해 가격 비교가 가능해지면 진료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지승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정보서비스부장은 “의료법을 개정해 동일한 진료행위에 대해서는 병원마다 얼마나 가격차가 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러면 병원 간의 가격 경쟁이 일어나고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비급여 진료비도 낮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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