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세계最高 K팝 팬클럽”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7일 03시 00분


해발 3600m 볼리비아에서 영화관 빌려 콘서트 감상회

“우리는 슈퍼주니, ‘어’예요!” 지난달 22일 오전 볼리비아 라파스의 시네마테카에서 열린
슈퍼주니어 콘서트 영상 감상회에서 케이팝 팬클럽 ‘엘프 볼리비아’ 회원들이 손바닥을
펼치면서 슈퍼주니어를 흉내 낸 구호를 외치고 있다. 라파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우리는 슈퍼주니, ‘어’예요!” 지난달 22일 오전 볼리비아 라파스의 시네마테카에서 열린 슈퍼주니어 콘서트 영상 감상회에서 케이팝 팬클럽 ‘엘프 볼리비아’ 회원들이 손바닥을 펼치면서 슈퍼주니어를 흉내 낸 구호를 외치고 있다. 라파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지난달 22일 남미의 내륙국가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스. 평균 해발 3600m인 고원도시다. 깎아지른 듯한 고봉들이 호위병처럼 둘러싼 갈색 도시에서는 인근 최고봉인 일리마니(해발 6438m)의 만년설이 눈에 선뜻하게 들어왔다.

라파스 도심의 예술영화 상영관 시네마테카 볼리비아나 2관 앞은 일요일인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몹시 시끄러웠다. 한국 남성 그룹 슈퍼주니어의 포스터가 보였다. 검은 머리 소녀 200여 명이 파란 풍선을 들고 한국말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들을 모은 것은 볼리비아의 슈퍼주니어 팬클럽 ‘엘프 볼리비아’가 주최하는 슈퍼주니어 서울 콘서트 영상 감상회였다. 한류 팬클럽으로는 문자 그대로 세계 최고(最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팬클럽은 오전 9시에 시작되는 감상회를 위해 100석짜리 상영관 하나를 빌렸지만 극장 안은 입석까지 가득 찼다.

불이 꺼지고 상영이 시작되면서 극장은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슈퍼주니어 멤버들이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동해!” “은혁!” “시원!” 하는 탄성이 터졌다. 야광봉과 풍선, 응원 문구도 세차게 흔들렸다. 고산증을 앓던 기자에게 장내의 열기가 더해져 숨쉬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엘프 볼리비아 회장 나탈리 키스페 씨(22·여·회사원)는 “최근 인터넷으로 슈퍼주니어 앨범의 특별판을 주문했는데 볼리비아의 주문 수량이 남미 나라들 중 가장 많았다”며 웃었다. 메르세데스 밥티스타 씨(23·여·무역회사 비서)는 직접 만든 은혁의 사진첩을 보여주며 “(슈주는) ‘나투랄(natural)하고 카리스마티코(carismatico)해’(자연스럽고 카리스마 있어) 정말 맘에 든다”고 했다.

전날 저녁 라파스 시내의 한 카페에는 동방신기, JYJ를 좋아하는 현지 팬들이 모였다. 여기서 만난 신디 시냐니 씨(23·여·항공사 직원)는 얼마 전 JYJ의 3월 페루 콘서트 티켓을 구하기 위해 버스로 15시간 거리인 페루 아레키파까지 다녀왔다. 팬들의 부탁으로 공연 표 15장을 사왔는데 티켓을 보는 순간 다들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볼리비아의 케이팝 팬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 4시면 라파스 도심에서 모임을 연다. 동방신기·JYJ 라파스 팬클럽 회장 조바나 갈베스 씨(26·여)는 “몇 년 전부터 인터넷 등을 통해 케이팝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2010년에 팬클럽을 공식 결성했다”고 말했다. 인근 도시 코차밤바에서 온 히메나 로마노 양(17)은 “같은 반 20명 아이들 거의 모두가 슈퍼주니어나 에프엑스 등 케이팝 가수들을 알고 학교에서 춤을 따라 추기도 한다”고 했다.

산안드레스종합대(UMSA) 방송국 DJ 디코 마르티네스 씨(22·여)는 “볼리비아는 여전히 극심한 남성상위 사회로 대중음악에도 여성을 비하하는 가사가 많다. 반면에 케이팝에서는 남녀가 평등하게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케이팝의 인기 덕분에 한글의 인기도 급등하고 있다. 최미희 라파스 한글학교 교장(50·여)은 “20명 수준이던 새 학기 등록자가 지난해 100명으로 늘었다”며 “이전에는 한인 교포 가정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들이 주로 배웠는데 요즘은 케이팝에 빠진 학생들이 다수”라고 했다.

현지 팬들은 기자에게 “한국에 가면 슈퍼쇼 콰트로(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진행되는 슈퍼주니어 월드투어 콘서트 ‘슈퍼쇼4’) 개최지에 반드시 볼리비아를 넣어달라고 전해 달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라파스=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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