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오늘은 우리엄마가 선생님!

  • 동아일보

초등학교 겨울방학 방과후 수업의 ‘학부모 재능기부’

《무형의 재능을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재능기부’의 바람이 최근 공교육 현장에도 불고 있다.학부모들이 자녀가 다니는 학교의 겨울방학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이 되어 자신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기부하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학부모들의 재능기부에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전문가로 활동하는 학부모뿐 아니라 전업주부 학부모까지 폭넓게 참여하고 있어 교육적 사회적으로 나눔의 가치를 새롭게 창출해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기 매탄초등학교의 ‘수공예 체험’반(위)과 경기 계남초등학교의 ‘방송댄스’반 수업현장(아래). 학부모가 직접 ‘선생님’이 되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겨울방학 방과후 수업이다.
경기 매탄초등학교의 ‘수공예 체험’반(위)과 경기 계남초등학교의 ‘방송댄스’반 수업현장(아래). 학부모가 직접 ‘선생님’이 되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겨울방학 방과후 수업이다.
26일 오전, 경기 계남초 5층 강당에는 걸그룹 ‘원더걸스’의 히트곡 ‘비 마이 베이비(Be my baby)’가 흘러나왔다. 이 학교 1∼3학년 여학생 12명이 무대 중앙에 선 강사의 구령에 맞춰 춤 연습을 한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는 이 학교 교사도, 외부에서 초청한 전문강사도 아니다. 바로 이 학교 1학년 이서연 양의 어머니 이은희 씨(38). 이 씨는 이달 5일부터 4주간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열린 ‘학부모 재능기부 방과후 교실 프로그램’의 ‘방송댄스’를 강의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댄스학원에서 댄스를 지도했던 이 씨.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재능을 기부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곧바로 방과후 수업을 맡겠다고 신청했다. 이 씨는 “딸과 그 친구들 앞에 서서 춤을 가르쳐주니 딸이 ‘학교 선생님 같다’며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게 됐다”며 웃었다.

방송댄스반을 포함해 학부모 재능기부로 개설된 이 학교의 겨울방학 방과후 수업 프로그램은 모두 22개. 전교생 1500여 명 중 절반인 710명이 참여 중이다. 지난해 여름방학 이 프로그램을 처음 개설했을 당시 12개 강좌에 총 335명이 참여한 것을 감안하면, 반 년 사이 규모가 2배로 성장할 만큼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가 치솟고 있다.

이 학교 김형숙 교장은 “특히 맞벌이 학부모는 방학 중 아이를 돌볼 수 없어 부득이하게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학부모가 교사로 참여하는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니 방학 중에도 학교와 학부모가 힘을 합해 아이들을 돌보는 효과를 내는 한편 아이들도 교과공부에 경도된 사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취미와 체험활동을 하면서 학교를 ‘재미난 놀이 공간’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양민 계남초학부모지원단 회장은 “엄마들이 잘할 수 있는 음식 만들기부터 뜨개질, 동요 부르기, 사물놀이 등에 재능을 가진 학부모들이 속속 참여했다”면서 “특별한 재주가 없더라도 아이와 놀기를 좋아하는 학부모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 학생들과 체험학습을 다녀오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재능기부로 성사된 방과후 수업은 각종 문화센터에서 유료로 배워야 했던 강좌를 학생들이 무료로 수강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학부모가 사교육비를 줄이는 실질적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학교는 판단하고 있다.

한편 경기 매탄초(교장 허숙희)는 방학만 되면 각종 아로마로 은은한 향이 교내에 배어난다. 매혹적인 향기를 따라 걸어가면 한 교실에 도착하게 된다. 방과후 수업으로 ‘수공예 체험’반이 운영되는 곳이다.

이번 겨울방학을 맞아 4∼6학년 23명은 말랑하고 투명한 젤리로 향초를 만들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투명유리용기 한가운데에 심지를 고정시킨 후 인형, 불가사리, 조개 등의 아기자기한 모형조각을 용기에 넣었다. 이후 선생님이 젤리를 가열해 액체상태로 만들자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향료를 이 액체에 첨가한 뒤 각자의 유리용기에 부었다.

학생들은 액체가 빨리 식어서 굳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젤리향초는 완성됐고,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만든 향초에 포장지를 입히며 기뻐했다.

젤리향초 외에도 아토피 예방에 좋은 로션, 방향제 등을 만드는 신기한 이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은 이 학교 6학년 김정현 양의 어머니 손순자 씨(43). 손 씨는 “딸에게 초등학교에서 쌓을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수업을 시작했다”면서 “4주간 학생들이 수업에 잘 따라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하고 기뻤다. 학생들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학부모의 재능기부활동이 공교육 전반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남아있을까. 매탄초에서 신문활용교육(NIE) 수업을 진행했던 학부모 배영란 씨(39)는 “학부모들이 재능기부를 전문적이고 어려운 일로만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사소한 일이라도 학부모 자신이 잘하는 일을 발견해내고 이것을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적 경험의 형태로 제공해줄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면 재능기부의 문은 모든 학부모에게 열려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재능기부를 통한 방과후 수업이 일회성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지역사회나 교육당국과 연계된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오승주 기자 canta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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