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이 대학 학생회 ‘접수’… 7년을 말아먹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행동대장, 2차례 학교 다니며 두번 회장… 1억대 횡령
조직 동원해 ‘후배 바지회장’ 5명 당선시켜 3억 가로채

2004년 10월 전남의 한 2년제 대학에서 1학년 김모 씨(당시 30세)가 학생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김 씨는 2007년 같은 대학 다른 과에 또 입학한 뒤 다시 학생회장이 됐다. 김 씨가 같은 대학을 두 차례나 입학해 학생회장을 한 이유는 뭘까.

전남 광양경찰서는 바지 학생회장을 당선시키는 수법 등으로 학생회비 3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단체구성) 등으로 김 씨 등 조직폭력배(조폭) 9명을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광양지역 L폭력조직 행동대장인 김 씨는 다른 학생이 학생회장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조직원들을 동원해 협박해 막고 자신이 내세운 김모 씨(33) 등 다른 학생 5명이 연달아 학생회장에 단독 출마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에 따르면 광고회사를 하던 김 씨는 학생회 인쇄물 등을 제작하면서 학생회장이 되면 학생회비를 횡령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앞서 김 씨가 속한 조폭조직의 선배 2명도 학생회장을 지냈다. 김 씨는 학생회장을 두 차례 지내면서 연간 학생회비 1억3000만 원 가운데 절반만 수련회(MT), 신입생환영회(OT) 등 각종 행사에 쓰고 나머지는 빼돌렸다.

바지 학생회장 5명에게는 2000만∼4500만 원씩 상납 받았다. 상납은 자신은 물론이고 아내 등 가족들의 은행계좌를 통해 은밀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불만을 가진 일부 조직원이 김 씨의 학생회비 횡령 사실을 경찰에 제보해 범죄 행각이 드러났다. 김 씨가 이런 수법으로 7년간 빼돌린 학생회비가 3억7000만 원에 이른다. 빼돌린 학생회비 상당액은 L파 단합대회 비용 등으로 쓰였다. 나머지는 김 씨 자신의 사업비 등으로 쓴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은 김 씨가 “학구열이 높아 공부하게 됐다. 나는 조폭이 아니다. 학생회비를 횡령한 적도 없다”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으나 가로챈 학생회비 일부가 김 씨가 속한 조직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경찰은 다른 대학 두세 곳에서 유사한 횡령사건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광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