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 국민참여재판서 혐의 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0시 12분


"임의(任意)로 진술한 게 맞습니까?"

"그거 다 소설입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내용 그냥 사인만 한 겁니다."

21일 오후 9시경 서울 동부지법 15호. 검찰 쪽 증인으로 나온 최모 씨(55)가 입을 열자 법정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2009년 4월 경기 부천 한 금은방에서 일가족을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대도(大盜)' 조세형 씨(73)의 국민참여재판이 형사11부(부장판사 설범식) 심리로 열리고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2번, 광진경찰서에서 한 번 제가 복역하는 교도소로 찾아왔습니다. 광진경찰서에서 왔을 때도 제가 분명 조서 내용이 틀리다고 부인했는데 협조 안 하면 반대급부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붙잡고 놔주질 않아 별 수 없이 사인했습니다."

최 씨는 2008년 경기 성남 분당구 구미동에서 있었던 특수강도 사건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는 인물로 2008년 당시 조 씨와 함께 범행했다고 진술했었다.

"도둑질은 해도 강도짓은 안 한다"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는 조 씨가 실은 예전에도 강도 행각을 벌인 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검찰 측이 내세운 증인이었다. 하지만 최 씨가 진술을 번복하고 나선 것이다.

최 씨는 "나 같은 잡범이 형님(조 씨)같은 사람과 범행을 저지르겠나. 날 지목한 사람을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며 "조 씨가 당시 범행에 가담했다고 진술한 권모 씨는 아파트 털이로 수십 억을 모았는데 이 돈을 지키기 위해 경찰에 협조했다는 얘기를 교도소 동료에게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최 씨가 이 같이 진술하자 검사는 재차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추궁했으나 최 씨는 "자꾸 질문해서 나를 끌고 들어가려 하지 마라"고 말할 뿐이었다.

뒤이어 나온 검찰 측 증인 권 씨는 "2008년 조 씨가 범행을 먼저 제안해 함께 범행 현장으로 답사가기도 했다"며 "2010년 초 다시 만나 조 씨에게 범행을 어떻게 했는지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이날 재판은 오전 11시 반경 시작돼 약 12시간 동안 이어졌다. 가장 오랫동안 증언대에 선 인물은 조 씨가 부천 사건에 가담했다고 처음 진술한 공범 민모 씨(47)였다. 부천 사건 이후 또 다른 범행을 저지르고 도주하던 중 다쳐 하반신불수(지체장애 1급)가 된 민 씨는 이날 누운 채 질문을 받았다.

부천 사건 범행 현장에서는 민 씨의 DNA 외에는 아무런 물증도 나오지 않은 상황. 재판 향방을 결정짓는 증인인 만큼 민 씨에게 오후 1시 45분부터 6시경까지 집중적으로 질문이 이어졌다. 증언 도중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기도 했지만 화장실에 가기 위해 약 20분간 휴정한 것 외에는 계속해서 질문에 응했다. 다만 변호인이 계속해서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질문하자 "한 부분만 찍은 사진으로 어떻게 알겠느냐. 변호사님이 범행 장소 사진을 너무 못 찍었다"며 퉁명스레 답하기도 했다.

20~40대 남성 7명, 여성 5명으로 구성된 배심원들은 변호사와 민 씨 사이 공방이 길어지자 눈을 감고 증언을 듣는 등 지루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배심원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조 씨는 이날도 재판 초반 "범행 장소에 없었다. (공소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했다. 그 순간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와 법원 경위가 제지했지만 조 씨와 2년 전 이혼한 아내 이모 씨(49)가 "(검사가)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하잖아요"라고 말해 판사의 경고를 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승복을 입고 승모를 쓴 이 씨는 휴정 중 기자와 만나 "얼마나 답답하면 머리 깎고 스님이 됐겠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오후 6시경 "빨리 끝내자"는 배심원 요청에 따라 30분간 저녁식사를 한 뒤 재판은 속개됐다. 부천 사건의 피해자 유모 씨(53)는 이날 증인심문에서 "조 씨를 사실 존경했는데 실망했다"고 말해 배심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비록 검찰 측 증인인 최 씨가 진술을 번복했지만 최 씨가 자신의 범행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조 씨와의 공동 범행 여부를 부인했을 가능성도 크다. 남은 쟁점은 조 씨가 부천 사건 당시 돈이 필요했는지 등 범행동기의 진위 여부다. 22일 오전 다시 열리는 재판에서는 조 씨의 전처 이 씨와 조 씨의 동업자, 조 씨의 측근이라고 주장하는 김모 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하며 이날 평결도 내려진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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