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거래장부 ‘유리알 체크’… “정유사 공급 기름값도 적어라”

  • 동아일보

지경부 입법예고에 정유사 “영업비밀 공개” 반발

앞으로 전국 주유소와 대리점은 정유회사에서 공급받는 기름의 월평균 가격을 장부에 기록해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유 및 주유업계의 가격구조를 유리알 보듯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은 “정부가 영업비밀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식경제부는 17일 대리점과 일반 주유소, 직영 주유소가 매달 정부에 제출하는 ‘거래 수급상황 기록부’에 정유사에서 공급받는 월평균 가격까지 적도록 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현재 대리점과 주유소는 장부에 거래처와 물량만 기재하고 있다.

또 입법 예고된 개정안은 정유사가 대리점과 일반 및 직영 주유소에 공급하는 주간 평균 가격을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매주 공개하도록 했다. 현재 정유사는 대리점, 주유소를 통틀어 전체 평균 공급가격만 공개한다.

이번에 입법 예고된 내용은 일반인과 업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심사 등을 거쳐 이르면 연내에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경부 측은 이날 입법 예고에 대해 “유통단계별 가격을 공개해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부는 전국 1만 개가량의 주유소가 정유사에서 공급받는 기름값을 모두 파악할 수 있어 어느 정유사가 다른 곳보다 비싼 값을 받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또 정유사가 직영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이 일반 주유소보다 낮다면 일반 주유소에도 직영 주유소와 같은 가격에 공급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지경부의 이날 입법 예고는 올 초부터 시작된 정부와 정유사의 ‘기름값 전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경부는 1월 13일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석유 가격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정유사들을 압박해 결국 4월 7일 석 달간의 한시적 기름값 인하조치를 이끌어냈다. 그 뒤로도 지경부는 △가격이 높은 주유소 500곳 장부 분석 △대안주유소 설립 및 대형마트 주유소 확대 추진 △자가 폴 및 셀프주유소 확대 추진 등으로 정유사와 주유소를 옭아맸다.

그럼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자 지경부는 이번 법령 개정을 통해 사실상 기름값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손에 쥐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유사들은 일제히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식품업체가 물건을 대량으로 사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가격과 슈퍼마켓 한 곳에 주는 가격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느냐”며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하면 시장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영업을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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