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케이팝으로 한국말 배우니 ‘쏙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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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위에~ □□이면 꽃이 피네~♪”… 20여명 손뼉치며 공연장 방불
서울 연남글로벌빌리지센터, 외국인에 가요로 한국어 수업

한국 이름 ‘김유안’이 더 좋다는 인도네시아인 유아니타 부다만 씨(왼쪽)가 강의실 앞으로 나와 자신의 애창곡 빅뱅의 ‘하루 하루’를 열창하자 동료들이 손뼉을 치고 있다. 마포구 제공
한국 이름 ‘김유안’이 더 좋다는 인도네시아인 유아니타 부다만 씨(왼쪽)가 강의실 앞으로 나와 자신의 애창곡 빅뱅의 ‘하루 하루’를 열창하자 동료들이 손뼉을 치고 있다. 마포구 제공
“자, 따라 부르면서 무슨 뜻인지 생각해봐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연남글로벌빌리지센터 소속 장지연 강사(34·여)는 외국인 20여 명과 가수 남진의 ‘님과 함께’를 흥겹게 불렀다. 강의실 화면에는 1970년대를 주름잡던 남진의 ‘느끼한’ 눈빛과 몸짓, 그리고 전형적인 트로트 창법이 흘러 나왔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그룹의 힘찬 춤사위가 아닌지라 웃음을 터뜨리는 수강생도 있었다. 수강생은 프랑스 터키 일본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이곳을 찾은 외국인 20여 명. 이들은 한국 노래를 배우며 한국말을 익히기 위해 ‘케이팝으로 배우는 한국어 강좌’에 참여한 수강생이다.

○ 케이팝으로 한국말 배우는 시대


‘님과 함께’는 오래된 노래지만 가수 김범수가 최근 다시 불러 인기를 모은 곡이라 수강생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하지만 남진이 요즘 아이돌 그룹보다 큰 인기를 얻었다는 설명에는 믿기 어렵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강사와 함께 노래를 불러본 수강생들은 곧바로 핵심 단어가 중간 중간 빠져 있는 시험지를 받아들었다. ‘저 푸른 ( )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 )이면 씨앗 뿌려 ( )이면 꽃이 피네…’와 같은 식이었다.

부를 때는 쉬운 듯했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 쉽지 않은 듯 전자사전을 꺼내거나 앞뒤 동료에게 묻기도 했다. 봄, 여름 등의 단어는 비교적 잘 적었지만 ‘으스대다’와 같이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렵고 뜻도 다분히 한국적일 때에는 무척 어려워했다. 하지만 강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잘난 체하는 표정을 짓자 수강생 모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그 뜻을 이해했다고 표시했다.

어렵게 단어 공부가 끝나고 김범수 버전의 ‘님과 함께’ 동영상이 나오자 수강생은 언제 힘들었냐는 듯 활기를 되찾고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며 공연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 다양한 피부색이 모여 다양한 목표로 배운다

프랑스 국적인 쿠마코 프리다 씨(30·여)는 “폭탄주나 369게임까지 한국 문화를 많이 익혔는데 노래를 통해서도 미묘한 한국어의 의미를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단어의 뜻까지 공부한 수강생들은 저마다 즐겨 부르는 한국 노래를 한 곡씩 앞에 나와 부르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의대를 다녔다는 유아니타 부다만 씨(24)는 자신의 본명에서 딴 한국 이름 ‘김유안’이라고 소개했다. 의사의 꿈을 접고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하겠다며 5월에 한국에 와 하루 8시간씩 춤과 노래를 맹연습하고 있다.

한국 노래를 소리 나는 대로 따라 부르고는 있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하니 감정 표현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이 강좌를 통해 한국 노래에 나오는 단어의 뜻을 차근차근 배울 생각이라고 한다.

한국인 남편을 둔 20대 중국인 새댁은 “남편은 군에 입대했고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 시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고, 남편이 오면 한국말 더 잘하게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강의를 듣게 됐다”며 “노래로 배우니 즐겁고 쉬워서 더 좋다”며 웃었다.

연남글로벌빌리지센터는 이 강좌에 앞서 ‘속이 시원하다, 귀가 얇다, 눈이 높다’ 등 관용적 표현을 배우는 강의를 개설하는 등 한국을 세밀하게 배우려는 외국인을 위해 특화된 강좌를 계속 마련해오고 있다. 케이팝을 통한 한국어 강좌는 19, 26일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강한 인턴 기자 부산대 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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