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의약품 구입에 따른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슈퍼에서 판매할 수 있는 의약품(의약외품)을 재분류하겠다고 3일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달까지 가정상비약을 슈퍼에서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이날 ‘의약품 재분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복지부가 정치권과 약사회의 압력에 밀려 국민의 편익을 외면하고 의약품 슈퍼 판매 논란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박카스, 슈퍼에서 판다?
현행 의약품은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전문의약품 △처방 없이 약사가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 △의사 처방이나 복약지도 없이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의약외품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달 열리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는 일반의약품 가운데 안전성 우려가 작은 파스 해열진통제 소화제 등을 슈퍼에서 팔 수 있는 의약외품으로 전환하는 방안과 슈퍼 판매 의약품이라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만드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한다. 현재 의약외품은 붕대 소독약 비타민 등 1만7000개 품목이다. 이 밖의 품목은 의약품 재분류가 끝날 때까지는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구입할 수 없게 됐다.
복지부가 일종의 정책 자문기구인 중앙약심에 의약품 재분류를 떠넘기면서 슈퍼 판매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말도 나온다. 조중근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 대표는 “의사는 전문의약품을, 약사는 일반의약품을 늘리려 할 것이다. 복지부의 이번 조치는 일방적인 약사회 입장만 반영한 것”이라며 “장관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이날 “10년간 제대로 열린 적 없는 중앙약심에 의약품 재분류를 맡긴 복지부의 무책임에 유감을 표명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 2년간 갈등만 빚은 의약품 슈퍼 판매 논란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는 2009년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과제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12월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언급하면서 범부처적으로 슈퍼 판매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초 복지부는 약사가 약국에서만 약을 팔 수 있도록 한 약사법 틀 안에서 당번 심야 약국 운영과 약국 외 판매 장소 확대 등 대안을 제시했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약사법 개정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조차 약사회 반발에 밀렸다. 결국 2년이 지나서야 의약품 재분류 방침을 발표해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손건익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기자 브리핑에서 “일반약 특수 판매 장소를 확대하는 방안은 약사회가 수용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시행이 어려웠다. 착잡하다”고 토로했다.
○ 중앙약심에서 의약합의 이뤄질까
중앙약심이 의약품 구입 불편 해소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의약품 재분류는 2000년 이후 처음 논의되는 것으로 그동안 의사와 약사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의사(4명) 약사(4명) 공익대표(4명)로 구성돼 직역단체 간 갈등을 일으킬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대한약사회는 밤 12시까지 운영하는 당번약국을 평일에는 전국에 4000곳, 휴일에는 5000곳 운영하고 저소득층부터 단계적으로 가정상비약 보관함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약사회는 이날 “국민들이 잠들어 있을 때에도 복약 상담을 위해 전화를 켜놓겠다”는 내용의 대국민 결의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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