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터디/언어영역]문학사적 의미있고 내용 탄탄한 현대詩 주목!

  • 동아일보

EBS 연계 분석 [6]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 문학영역의 문항 출제 과정에서는 제재의 선정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질 것이다. 제재는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문학사적으로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 또 하나의 제재에서 여러 문항을 출제할 수 있는 탄탄한 내용이어야 한다. 교육방송(EBS) 교재에 실린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대비할 수 있는 다양한 현대시 작품을 살펴보자.》
김광균의 ‘노신(魯迅)’이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수험생에 따라 낯설 수도, 익숙할 수도 있는 ‘EBS 운문문학’ 수록 작품이다. 시인으로서의 고뇌와 극복 의지를 다룬 작품이다.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
먼 기적소리 처마를 스쳐가고
잠들은 아내와 어린 거의 베개 맡에
밤눈이 나려 쌓이나 보다.
무수한 손에 뺨을 얻어 맞으며
항시 곤두박질해 온 생활의 노래
지나는 돌팔매에도 이제는 피곤하다.
먹고 산다는 것,/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
등불을 켜고 일어나 앉는다./담배를 피워 문다.
쓸쓸한 것이 오장을 씻어 나린다.
노신이여/이런 밤이면 그대가 생각난다.
온 세계가 눈물에 젖어 있는 밤
상해 호마로 어느 뒷골목에서
쓸쓸히 앉아 지키던 등불
등불이 나에게 속삭거린다.
여기 하나의 상심한 사람이 있다.
여기 하나의 굳세게 살아온 인생이 있다

- 김광균, ‘노신’

이 작품의 화자는 ‘시’를 쓰는 작가다. 그런데 첫 행에서 ‘시를 믿고 어떻게 살아가나’라고 이야기한다. 시를 쓰는 순수한 예술적 삶에 어려움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어 ‘서른 먹은 사내가 하나 잠을 못 잔다’라고 한다. 앞서 말한 어려움이 심각한 수준임을 말해 주는 부분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먹고 산다는 것, 너는 언제까지 나를 쫓아오느냐’에서 생활의 궁핍(窮乏)함이 드러난다. 이런 삶 때문에 화자는 ‘상심한 사람’이다. 그러나 화자는 무기력하거나 비굴하게 살아온 것이 아님이 ‘굳세게 살아온 인생’에서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등불을 매개로 해 ‘노신’(루쉰·아큐정전의 작가, 중국 격변기에 날카로운 성찰을 담은 작품을 저술함)과 동일시한다. 시를 쓰고자 하는 화자는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가장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비굴한 삶을 생각하지 않고 ‘노신’으로 표상되는 이상적 존재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소명과 인생의 목표를 되새기고 있다.

다음은 기교 중심의 시적 언어에 대해 비판하는 김현승의 ‘형설(螢雪)의 공’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시다.

반딧불을 모아/눈을 비췰 수는 있으나,
눈을 녹일 수는 없다./그 눈을 모아
너의 언어를 읽을 수는 있으나,
너의 언어를 태울 수는 없다./이 치운 겨울에
말들은 왜 심장에 뿌리를 두지 않는가.
얼음 꽃은 햇볕에 아름다우나
얼음 꽃은 햇볕에 녹아 버릴 것이다.
형설로 배운/너희들의 언어는
추상에서 아름다움으로 뒤바꿈질을 한다.
끓는 핏속으로 들어가
보대끼는 금속처럼 불꽃을 튀기지는 못한다.
점잖은 수염을 바라보며/자못 머뭇거리고 있다.
고원의 아이들과 어울려 노래하지 않는다.
왜 타지 못할까?/왜 태울 줄을 모르는가?
너희들의 언어는 기교의 가지 끝
서릿발로 치운 이 겨울에…

- 김현승, ‘형설의 공’

이 시는 시인이 쓰는 시적 언어에 대한 본질을 말하고 있다. 흔히 ‘형설의 공’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노력한다는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시적 기교를 부린 시는 진실함을 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기교만을 내세운 시는 눈을 비출 수는 있으나 ‘녹일’ 수는 없고, 언어를 읽을 수는 있으나 ‘태울’ 수는 없다. 끓는 핏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는 시는 추상(抽象)에서 구상(具象)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곧장 표면적인 아름다움으로 바뀌어 버린다.

이 시에는 ‘서릿발’처럼 추운 시대적 아픔앞에 닦은 기교 중심의 시는 그 역할을 다할 수 없다는 비판이 담겨 있다. 추상적인 관념이 시를 통해 구체화돼야 그 시를 보고 젊은이들이 끓는 피를 보일 수 있는데 기교 중심의 시는 그러지 못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다음은 신경림의 ‘누항요’다.

이제 그만둘까 보다. 낯선 곳 헤매는 오랜 방황도
황홀하리라, 잊었던 옛 항구를 찾아가
발에 익은 거리와 골목을 느릿느릿 밟는다면
차가운 빗발이 흩뿌리며, 가로수와 전선을 울리면서
꽁치 꼼장어 타는 냄새 비릿한 목로에서는
낯익은 얼굴도 만나리,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리리
이내 어둠은 옛날의 소꿉동무처럼 다가오고,
발길 따라 깊숙한 골목 여인숙 찾아 들어가면
눅눅하고 퀴퀴해서 한결 편해지는 잠자리
꿈인 듯 생시인 듯 들리리, 네가 잠들 곳 또한
이같이 익숙한 곳 편안한 곳이라는 소리가, 먼데서

- 신경림, ‘누항요’

이 시의 주제는 익숙한 옛 항구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이다. 낯선 곳의 생활을 정리하고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누항(陋巷)은 박인로의 ‘누항사(陋巷詞)’처럼 누추한 거처를 말한다. 이 작품에서는 익숙한 옛 항구를 의미한다. 그곳은 화자의 발에 익은 거리가 있는 곳이다. 낯익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비록 내 집이 아닌 냄새나는 ‘눅눅하고 퀴퀴한’ 여인숙에서 잠들더라도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현대인이 그리워하는 마음속 고향에 대한 향수를 나타낸다. 특히 ‘∼리라, ∼리’의 종결어미는 추측의 의미를 가지면서 화자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박재삼의 ‘어떤 귀로’는 그의 시 ‘추억에서’를 떠올리게 한다. 가난에 지친 어머니의 고달픈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새벽 서릿길을 밟으며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가
촉촉한 밤이슬에 젖으며
우리들 머리맡으로 돌아오셨다
선반엔 꿀단지가 채워져 있기는커녕
먼지만 부옇게 쌓여 있는데,
빚으로도 못 갚는 땟국물 같은 어린것들이
방 안에 제멋대로 뒹굴어져 자는데,
보는 이 없는 것,/알아주는 이 없는 것,
이마 위에 이고 온/별빛을 풀어놓는다.
소매에 묻히고 온/달빛을 털어놓는다.

-박재삼, ‘어떤 귀로’

이 작품은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전통적인 어머니상이 잘 드러나 있다. 새벽에 나가 밤늦게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고생과 자식들에 대한 사랑을 별빛과 달빛으로 형상화하며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하게 노래한다. ‘서릿길’은 어머니가 헤쳐 나가야 할 시련을 의미한다.

다음은 박목월의 ‘적막한 식욕’이다. 인생의 쓸쓸함과 그것을 달래는 음식을 노래한다.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에 올라
새 사돈을 대접하는 것.
그것은 저문 봄날 해질 무렵에
허전한 마음이/마음을 달래는
쓸쓸한 식욕이 꿈꾸는 음식.
또한 인생의 참뜻을 짐작한 자의
너그럽고 넉넉한/눈물이 갈구하는 쓸쓸한 식성.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을 하고
손과 주인이 겸상을 하고/산나물을/곁들여놓고
어수룩한 산기슭의 허술한 물방아처럼
슬금슬금 세상 얘기를 하며/먹는 음식.
그리고 마디가 굵은 사투리로
은은하게 서로 사랑하며 어여삐 여기며
그렇게 이웃끼리/이 세상을 건너고/저승을 갈 때,
보이소 아는 양반 앙인기요
보이소 웃마을 이 생원 앙인기요
서로 불러 길을 가며 쉬며 그 마지막 주막에서
걸걸한 막걸리 잔을 나눌 때/절로 젓가락이 가는
쓸쓸한 음식.

-박목월, ‘적막한 식욕’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강사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강사
이 시는 인생에서 느끼는 쓸쓸함을 형상화하고 있다. 식욕을 바탕으로 한 실존적 자아의 모습을 극명히 보여준다. 제목 ‘적막한 식욕’의 ‘적막’과 ‘식욕’으로 상징되는 삶의 속성을 제시한다. 식욕이란 삶의 기본적인 속성이자 삶을 이어나가는 가장 기초적 욕구다. 이러한 삶의 기본적 욕구가 ‘적막한’이라는 수식을 통해 쓸쓸하고 조용한, 그리고 ‘막막한’이라는 정서적 속성과 결합되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존재의 속성을 표출한 상징적 음식이 바로 ‘모밀묵’이다. 이 시는 방언을 사용해 시적 진술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말을 건네는 방식의 표현은 이웃에 대한 친화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자세한 설명은 ezstud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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