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 ‘마지막 장의사’ 원도희 씨의 슬픈 기억

  • Array
  • 입력 2011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수의 못구해 입은 옷 그대로 입관”

광주 금남로 5·18 전야제 5·18민주화운동 31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 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의 의미를 담은 전야제 공연이 열렸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광주 금남로 5·18 전야제 5·18민주화운동 31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 5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의 의미를 담은 전야제 공연이 열렸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신 50여 구를 수습했습니다. 수의가 없어 피로 얼룩진 참혹한 희생자 시신을 입은 옷 그대로 소나무 관 등에 입관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31주년을 앞둔 17일 광주 동구 학동 남광주시장 내 보훈기독장의사. 원도희 대표(75)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1961년부터 광주지역 교회 신도 등을 대상으로 장의사 일을 하고 있다. 그는 5·18 당시 희생자들을 입관해 영원한 안식을 준 오월 광주의 마지막 현역 장의사로 통한다.

원 대표는 1980년 5월 19일부터 1주일 동안 전남대병원이나 광주기독병원 응급실, 광주공원 등에서 5·18 희생자 시신 50여 구를 입관했다. 그는 5·18 당시 항상 관을 두 개 가지고 다녔다. 빈 관을 가지고 다녀야만 계엄군이나 시민군이 지키고 있던 지역을 무사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 대표는 “입관한 희생자들 가운데 젖가슴이 찢어진 30대 여성, 엄마와 함께 숨진 세 살짜리 아이, 광주공원 긴 계단에서 끌려오던 시신이 큰 슬픔으로 남는다”고 회고했다. 5·18 당시 광주교도소에 근무하다 장의업계에서 종사하고 있는 임금용 씨(69)는 “원 대표가 5·18 희생자 시신들을 많이 수습했다”고 말했다.

원도희 씨가 희생자 시신을 안치한 옛 전남도청 인근 상무관 앞에서 옛 서현교회 사진을 들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원도희 씨가 희생자 시신을 안치한 옛 전남도청 인근 상무관 앞에서 옛 서현교회 사진을 들고 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당시 광주지역 장의업체 10여 곳은 5·18 희생자들을 위해 관을 기부했고 장의사들은 자원봉사로 시신을 수습했다. 5월 광주는 시장상인 등이 시민군에 주먹밥을 제공하고 장례도 무료로 진행되는 나눔과 연대가 넘쳤다. 장의업체 대표들은 5·18 이후 “시민군이 관을 강제로 빼앗아갔다”는 진술을 받으려다 실패한 계엄군에 수차례 조사를 받았다.

원 대표가 5·18 희생자 시신 수습에 참가하게 된 것은 교회와의 인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광주 남구 구동 서현교회 집사로 활동했다. 장의사 허가가 쉽게 나지 않을 때라 신도들을 중심으로 저렴한 장례를 치러줬다. 5·18 당시 서현교회는 시민군 200명이 숙식을 해결했다. 시민군은 5·18 초기에 광주 동구 남동성당과 서현교회에 머물며 옛 전남도청 항쟁을 이어갔다. 변남주 서현교회 원로목사는 “5·18 당시 시민군은 10일 동안 교회에서 제공한 주먹밥을 먹으며 항쟁을 펼쳤다”고 말했다. 원 대표의 부인 김소님 씨(74)도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제공하다 다쳤고 5·18 유공자로 뒤늦게 신청해 심사가 진행 중이다.

광주신학교 1회 졸업생(광신대 전신)인 원 대표는 1957년부터 3년간 육군 1야전병원 위생병으로 근무했다. 그는 1961년 장례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을 알고 교회 신도를 대상으로 장의를 했다. 장례 허가를 쉽게 받을 수 있던 1989년 장의업체를 정식으로 차렸다. 그는 1950년 전투에서 전사한 원용진 육군 소령(당시 39세)의 아들이어서 공직이나 학교에 취업했지만 장의사 일을 50년간 했다.

원 대표는 “5·18 희생자 시신을 제대로 닦지 못하고 소지품만 확인한 뒤 10분 만에 입관했던 것이 죄송스럽다”며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