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살해 경찰관 “자랑스럽던 아들이 부끄러운 존재 됐다” 국민재판서 징역 3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5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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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아빠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에서 제일 부끄러운 존재가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1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전지방경찰청 전 강력계장 이모 씨(40·구속)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 25일 오후 8시 대전지법 316호 법정. 이 씨는 최후진술 내내 울먹이면서 "용서라는 말을 쓰지 못하겠지만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1월 21일 오후 11시 27분 대전 서구 탄방동 어머니 윤모 씨(68) 집에서 미리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던 어머니를 엎드려 뉘인 뒤 7.2㎏ 짜리 볼링공을 허리와 등에 5~7차례 떨어뜨려 어머니가 이튿날 오전 4시 경 과다출혈 및 쇼크로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달 기소됐다. 이 씨는 "교통사고를 위장할 수 있도록 신체에 상해를 입혀 주식으로 진 나의 빚을 갚아 달라는 어머니의 제안으로 이런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형사12부 문정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은 일반 시민 7명이 배심원으로 참여해 죄의 유무와 형량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재판부가 이를 권했고 이 씨 측이 수용했다고 법원 측은 밝혔다. 법정에는 이 씨의 가족 뿐 아니라 같이 근무했던 대전지역 경찰관들이 눈에 띠었다.

이 씨는 어머니를 숨지게 한 범행을 비롯해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인정했지만 △볼링공을 떨어뜨린 횟수와 높이 △보험금을 수령했을 경우 나눠 가질 계획이었는지 여부 등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볼링공을 떨어뜨린 횟수와 높이는 사망의 결과를 예견했는지, 보험금의 배분 여부는 개인적 이득을 취할 욕심이 개입됐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어서 형량을 좌우한다.

검찰은 이 씨의 경찰 진술과 윤 씨 신체훼손 상태에 대한 부검의 소견을 감안할 때 이 씨가 볼링공을 5~7회, 허리와 얼굴 부근에서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이 씨가 경찰에서 "어머니 보험금 타면 나도 좀 줘"라고 말했던 것으로 미뤄 최소한 보험금을 나눠 갖기 위한 범행이었고 이 씨가 먼저 제안했을 수도 있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은 "이 씨가 범행 직후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은 것은 수면제를 먹은 사실이 의료진에 탄로 나면 보험금 수령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고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씨와 변호인 측은 "볼링공은 허리 부근에서 2, 3회만 떨어뜨렸다"며 "'보험금을 나도 좀 달라'는 말은 손자들 용돈 정도를 말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또 "범행 직후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기지 않은 것은 응급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이 씨의 아내가 어머니를 살펴본 뒤 괜찮다고 했고 어머니가 청심환을 마신 뒤 편히 잠 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증인으로 나온 이 씨의 아내와 여동생, 이모 등은 "이번 범행은 어머니의 말이라면 거역하지 못하던 효자 아들이 빚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며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순간적인 판단 실수로 일어났지만 가족을 보아 선처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검찰은 "이번 범행은 경찰 간부로서 직분을 망각했을 뿐 아니라 모친을 살해한 패륜 범죄이고 살해 목적의 존속살해죄를 검토해야할 만큼 중대한 범죄"라며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대전지방법원 제12형사부(재판장 문정일)는 배심원 8명(예비배심원 1명 포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재판에서 피고인 전 대전지방경찰청 강력계장 이모 씨(40)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범죄를 예방해야 할 경찰 간부가 범죄를 저질렀고 수면제를 먹이는 등 범행 수법과 방법, 7㎏ 가량의 볼링공을 여러 차례 고령의 모친에게 떨어트려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은 죄질이 무겁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15년 넘게 경찰간부로 성실히 근무했고 이번 범행으로 모친이 사망했고 자신의 지위를 모두 잃은 점 등은 피고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이며 또 다른 형벌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며 "유족이 선처를 호소하고 초범인 점, 깊이 참회하는 점, 불우했던 가정환경 등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장동혁 공보판사는 "형법은 존속상해치사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작량감경(酌量減輕·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이 형량을 줄여주는 것)을 적용했다"며 "어머니가 범행을 제안했거나 최소한 동의한 사건이라는 점에도 주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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