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삼호주얼리호 선원들]김두찬 갑판장 - 정상현 조리장이 전한 ‘악몽의 14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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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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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들 ‘오, 삼호 세임세임… 돈 많은 코리안 잡았다’ 술파티”

설날인 3일 오전 삼호주얼리호 갑판장 김두찬 씨(왼쪽)가 부산 북구 구포동 자택에서 어머니 문금옥 씨(84)와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마주잡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설날인 3일 오전 삼호주얼리호 갑판장 김두찬 씨(왼쪽)가 부산 북구 구포동 자택에서 어머니 문금옥 씨(84)와 이야기를 나누며 손을 마주잡고 있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삼호주얼리호 피랍에서 구출 작전까지의 과정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은 석해균 선장(58), 김두찬 갑판장(61), 정상현 조리장(57)이다. 해적들은 선장, 갑판과 식사를 책임지는 이들과 자주 마주쳤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석 선장을 제외한 두 사람을 만나 급박했던 상황을 들어봤다. 이들은 똑똑히 기억했다. 잊을 수도 잊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거침없이 대답했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순간을 멈춰 세우는 듯했다.

―피랍 당시 상황은….

“오전 7시 반경 비상벨이 울린 뒤 시간을 보니 7시 48분이었는데 1항사가 해적이 올라온다고 했다. 아침 식사시간으로 기억한다. 대피소로 갔다. 곧 해적들이 선박 엔진을 끄고 배를 세웠다.”

―대피소 상황은….

“3시간가량 있었다. ‘메이데이(Mayday·해상에서 쓰는 구조신호)’라며 근처 해군이나 상선에 이동용 무전기로 구출해 달라고 했다. 답이 왔었는데 너무 멀었고 감이 안 좋았다. 3시간 동안 해적들은 쇠문이나 맨홀 뚜껑을 쇠파이프로 뜯고 있었다. 맨홀이 열리자 해적들은 우리를 브리지(조타실)로 데려갔다.”

―조타실에서 어떻게 했나.

정상현 조리장이 3일 큰아버지 정명호 씨(76)와 아들 명균 군(17), 부인 김정숙 씨(51)와 김해시 자택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왼쪽부터). 김해=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정상현 조리장이 3일 큰아버지 정명호 씨(76)와 아들 명균 군(17), 부인 김정숙 씨(51)와 김해시 자택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왼쪽부터). 김해=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해군 헬기 공격에 대비했다. 헬기가 뜨면 우리를 가운데에 세우고 해적이 서고, 다시 선원들을 세웠다. 총알받이로 삼기 위해서다. 칫솔 팬티 양말 전자제품 등 소지품을 모두 뺏었다. 감시하는 해적을 제외하고는 납치에 성공해 기분 좋다며 축하파티를 하더라.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해적들이 본부와는 어떻게 연락을 취했나.

“수시로 해적본부와 연락했고 지시를 받았다. 바다에 떠 있는 다른 해적과도 연락했다. 임무가 분리돼 있었다. 13명은 납치 전문인 것 같았다.”

―해적들이 군인인가.

“예전 직업이 뭐든 전부 군인이다. AK소총을 분리해 조립하는 데 1분도 안 걸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제일 악질은 (석 선장을 쏜) 아라이다. 그가 총을 안 쐈다는 말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대질심문은 우리가 요청했다. ‘네가 쏜 놈이다’라고 얘기했다.”

―삼호드림호를 납치한 조직과 같나.

“그렇게 추측된다. 눈이 쫙 찢어진 죽은 해적이 얘기했다. ‘세임 세임(same same)’이라고 하더라. 삼호드림호도 탔다는 얘기로 들렸다. 해적 13명 가운데 2, 3명이 탄 걸로 추측한다. 생포된 해적 가운데 있을지도 모른다. 950만 달러(석방금액) 이야기도 하고. ‘납치만 성공하면 당신들은 살려 주겠다’고 꼬드겼다. 돈이 없다고 하자 ‘코리아, 컴퍼니(삼호해운)는 돈이 많다’고 했다. (허망한 듯) 한국인 8명이 탔다니까 박수를 치면서 노래하고 좋다고….”

―구타를 많이 했나.

“위스키 병으로 때렸다. (직접 칼 크기까지 손으로 설명해 가며) 소 뼈 자를 때 쓰는, 네모난 중식용 칼 알지 않나. 날마다 그걸 갖고 다녔다. 청해부대 1차 작전 뒤에는 선장과 갑판장에게 ‘소말리아에 가면 너희들은 반드시 죽인다’고 했다.”

―청해부대 1차 구출작전 당시 상황은….

“누가 우리 선원들이 (해군 쪽을 향해) 백기를 흔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우리들은 (해군들이 여기 오면 위험하니까) ‘가라’고 한 뜻이다. (해적 난사 장면을 흉내 내며) 근데 해군이 (백기 투항으로 오인하고) 오니까 해적들이 드르륵 갈기더라. (갑자기 울분이 치미는 듯) 해적들이 그런 교전에서도 총을 한 방도 안 쐈다고 주장한다고 하니까 내가 진짜…. 우리나라는 법도 좋고 인정이 너무 많은 거다.”

―2차 구출작전 당시 상황은….

“오전 4시부터 날 밝을 때까지 해군이 드르륵 갈겼다. 아주 전쟁터였지. 총알이 빗발쳤지. 한참 뒤 최루탄 냄새가 엄청 나면서 ‘한국 해군입니다. 한국 선원들 나오세요’라고 하더라. 그래도 해적들은 반항하더라. 그래서 8명이 사살된 거다. (담배를 한 대 물며) 아, 진짜…. 지금 누가 방문만 팍 열어도 깜짝깜짝 놀란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조용휘 기자 silent@don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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