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커뮤니케이션연구회 세 교사의 문·이과 통합 교육실험

  • 동아일보

수능 대신 모형 포클레인 제작 몰두… 평범한 일반고생 7명을 명문工大로

새로운 교육실험을 하고 있는 현직교사 3인방인 이효근(하나고), 김평원(마포고), 정형식 교사(하나고·왼쪽부터)가 27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동 하나고에 모였다. 교사 3인은 제자들이 만든 모형 포클레인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들의 목표는 과학과 공학,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통합한 문·이과 융합교육과정을 전국 학교에 보급하는 것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새로운 교육실험을 하고 있는 현직교사 3인방인 이효근(하나고), 김평원(마포고), 정형식 교사(하나고·왼쪽부터)가 27일 오후 서울 은평구 진관동 하나고에 모였다. 교사 3인은 제자들이 만든 모형 포클레인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들의 목표는 과학과 공학,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통합한 문·이과 융합교육과정을 전국 학교에 보급하는 것이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숭실고 3학년 신형곤 군(19)은 요즘 꿈에 부풀어 있다. 3월이면 과학기술 분야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포스텍에서 자신이 꿈꿨던 기계공학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군은 이 대학 수시전형에 응시해 지난해 11월 298명의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신 군은 2학년 때 전교 10위권에 들기도 했지만 1학년 때는 전교 160등 밖이었다. 내신이 포스텍에 갈 만큼 높진 않았던 것. 영화 ‘아이언맨’을 보고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신 군은 당시 숭실고에 재직하던 정형식 하나고 교사(40·물리 담당)에게서 “한국공학한림원이 주관하는 교육 시범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일종의 교육혁신 실험으로 과학, 공학, 커뮤니케이션을 융합한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또 대학의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한 수시입학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설명을 들은 신 군은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신 군은 같은 학교 친구 6명과 함께 2009년 여름부터 5개월에 걸쳐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높이 20cm 남짓한 모형 포클레인을 만들었다. 또 이 팀은 창의공학교구콘텐츠경진대회가 진행되는 3개월 동안 동전분리기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다시 한 번 수행했다. 한창 공부해야 할 고교 2, 3학년에 걸쳐 두 프로젝트를 완성하느라 8개월이나 시간을 빼앗겨야 하기 때문에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은 대입 입학사정관 면접에서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교수들이 프로젝트에서 겪었던 과정을 구체적으로 물으며 관심을 보였고 신 군은 마침내 합격까지 했다. 같은 팀원이던 나머지 6명도 서울대(1명), 연세대(4명), 서강대(1명) 등의 수시전형을 통과했다.

○ 새로운 교육 프로젝트의 주역, 교사 3인방

숭실고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 배경에는 세 명의 교사가 있다. 정 교사와 김평원 마포고 교사(38·국어 담당), 이효근 하나고 교사(42·생물 담당)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의기투합한 것은 2008년 서울시교육청 주관의 한 논술대회 심사장에서다. 추구하는 교육관이 비슷했던 세 교사는 “융합 교육과정을 만들어 보자”는 결의로 한국공학커뮤니케이션연구회(KECA)를 결성했다.

연구회가 만든 이 프로젝트들은 공학 제품을 설계하고 만들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토론, 프레젠테이션, 보고서 작성 등 쓰기·말하기 활동도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정 교사는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발표 능력이나 자료를 보는 눈이 부쩍 달라지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공학 교육에 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김 교사는 “특허나 논문 등을 보면 혼자 하는 연구는 없고 협동연구가 대부분이다. 이공계도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 참가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대학교수들의 날카로운 심사평을 들으며 많은 사람을 상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숭실고팀 대표였던 신 군도 지난해 2월 창의공학교구콘텐츠경진대회 발표회에 나섰다. 특허청 관계자와 대학교수 4명, 300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다. 신 군은 “평소 앞에 나서면 잘 떠는 성격이었지만 프로젝트 경험 덕분에 거의 긴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연구회가 실험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은 체험 활동과 면접이 강조되는 최근의 입학사정관제에 아주 잘 들어맞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 의대 간다던 학생들, 공학자 꿈꿔

“이들 이후에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생들도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됐습니다. 막연히 의대, 치대 등 잘나가는 학과만 생각하던 학생도 공대로 진로를 바꾼 경우가 많아요.”

정 교사는 학생들에게 공학이 재미있는 분야라는 점을 느끼게 하고 적성을 찾아주는 작업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목표라고 했다. 신 군 얘기를 꺼냈다.

“수학 시간에 수식으로만 배웠던 코사인 제2법칙을 프로젝트에 적용해 봤대요. 막대기를 밀었을 때 원하는 각도만큼 원반을 회전시키는 장치가 필요했거든요. 아이들은 수학이 문제풀이에만 쓰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실생활에도 쓰일 수 있구나, 공학이 재미있구나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김 교사는 “재미있는 건 특목고 학생보다 일반고 학생이 프로젝트에서 더 두각을 보인다는 점”이라며 “지식이나 순간의 번쩍이는 영감보다는 시행착오를 수차례 감내하는 끈기가 필요하고 몸으로 뛰면서 결과물을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위해 수시로 청계천 기계상가 일대를 돌아다녀야 했다. 정 교사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장기간 프로젝트 활동을 하던 학생은 입학사정관과 교수 앞에서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들이 학생들의 보여주기 식 ‘스펙 쌓기’가 아니냐는 질문에 김 교사는 “직접 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장기간의 경험을 쌓는 활동”이라며 “체험활동은 공교육의 틀 안에서 해야 인정받지 사교육으로 채울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입학사정관이나 교수들은 진짜인지 아닌지 금방 안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만 파고드는 학교는 이제 경쟁력이 없습니다. 일반 고교에 다니는 평범한 학생도 어떤 프로그램으로 가르치느냐에 따라 명문대학을 보낼 수 있고, 그렇게 하는 학교가 살아남는 시대니까요. 사교육이나 참고서가 안 통하는 ‘진짜 스펙 쌓기’가 필요한 것이죠.”

세 명의 교사는 26일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공학교육혁신 부문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서영표 기자 sypy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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