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계속된 한파로 전력소비량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사무실은 점심시간이 되자 형광등이 자동으로 꺼졌다. 한국전력은 본사를 비롯한 그룹사 전체가 점심시간을 한 시간 당겨 전기소비량이 가장 많은 오전 11시부터 낮 12시까지 형광등을 비롯한 모든 전기기구 사용을 중지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불과 4만 kW를 남겨두고….”
사상 최대의 전력난이 예상된 17일 오전. 실시간으로 예비전력을 확인하던 전력거래소 직원들은 정오가 돼서야 한시름 놓은 표정이었다. 주말부터 이어진 한파로 이날 오전 예비전력이 ‘비상사태’ 수준인 400만 kW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4만 kW를 남겨두고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기 때문. 지식경제부 측은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가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은 시간대인데 다행히 무사히 넘겼다”며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지식경제부는 이날 오후 4시경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등 여수 산업단지 일대가 정전됐다는 소식에 한때 술렁거렸지만 전력 과부하에 따른 정전은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졸였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공기업 및 주요 기관은 정전(停電) 등 에너지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사무실 내 전력 수요 분산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는 모든 사무실의 전등과 난방 기기 전원을 껐다. 전 직원 2100여 명이 이른 점심식사를 위해 사무실을 비웠기 때문. 한전과 전력그룹사는 이달 6일부터 보름간 직원 점심시간을 오전 11시∼낮 12시로 한 시간 당겼다. 한전 관계자는 “오전 11시가 대부분 기업 및 상가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 전력사용량이 많은 시간”이라며 “한전 사무실을 비워 전력 수요를 분산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전에 이어 일진그룹도 민간기업 최초로 경기 수원공장 등 4개 공장의 점심시간을 오전 11시로 조정했다.
행정안전부로부터 에너지 절감 지침을 내려받은 서울시청과 각 구청도 난방과의 전쟁에 나섰다. 서울시청은 이날부터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4∼6시 사이 하루 두 차례 히터를 끄고 근무했다. 도봉구청은 오전 8시부터 9시 반까지만 난방을 하고 햇볕이 드는 그 이후부터는 모두 중지한다. 서초구청은 ‘에너지 당번제’를 도입해 정오마다 사무실 내 전자기기 전원을 차단하고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원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실내 온도가 낮아 직원들에게 점퍼를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원들은 환자 치료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비상 발전기를 갖춰 놓고 정전에 대비 중이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은 치료에 필요한 적정 온도 25∼27도를 유지하기 위해 본관과 지하주차장 등에 자체 비상 발전기 5대를 갖췄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역시 긴급수술 및 중환자실 생명유지장치 유지를 위해 고압 발전기 5대를 운영하고 있다. 정전이 되더라도 전체 전력 가동률 50% 기준에서 약 54시간을 버틸 수 있다. 각종 국제 행사 등이 자주 열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도 건물의 상징성 및 안정성을 고려해 자가발전을 하고 있다. 무역센터 측은 “하절기와 동절기마다 한전과 협의해 자체 가스 발전기 3대를 돌린다”며 “무역센터 단지 전체 전력 사용량의 10%를 생산해 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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