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 소방관은 3년만 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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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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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치 안돼도 기한 지나면 지원 끊겨… 치료 막막

2008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때 인명 구조에 나섰다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중앙119구조대 김진태 소방관. 12일 병원에서 화상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008년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때 인명 구조에 나섰다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은 중앙119구조대 김진태 소방관. 12일 병원에서 화상치료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아파트 12층인 중앙119구조대 김진태 소방관(45)의 집은 오후 2시에도 깜깜했다.

“햇볕이 안 들어오게 베란다 창에 블라인드를 쳤어요. 자외선을 쐬면 피부가 검어지거든요.” 김 소방관은 집에 와서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지 않았다.

그는 붕대 감긴 손으로 앨범 한 권을 꺼냈다. 100km 울트라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에 출전해 찍은 사진들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벽돌더미에서 축 늘어진 개 한 마리와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인명구조견 조련사로 세계 각지의 재난현장을 다닐 때 찍은 것들이다.

특전사 출신인 그의 별명은 ‘울트라 진태’. 그는 사진 속에서 마라톤 결승선을 지나며 활짝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를 더는 보지 못한다. “요즘은 대원들하고 식사하는 것도 제가 꺼려요.”

그의 인생을 바꾼 2년 전 사건. 2008년 12월 경기 이천의 한 물류창고에 불이 났다. 대형 화재였다. 인부 6명이 숨지고 한 명이 실종된 상황. 김 소방관은 실종자를 찾아 불타는 건물을 수색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 “무너진다!” 몸을 돌리는 순간 김 소방관은 건물 붕괴로 인한 열 폭풍 때문에 수십 m를 튕겨져 날아갔다.

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얼굴 화상이 특히 심해 지금도 피부이식 수술을 더 받아야 한다. 하지만 연 1억 원 가까이 드는 치료비를 국가가 대주는 것도 딱 올해까지. 치료 시작 후 3년이 지나면 지원이 끊긴다. 병원에 있는 동안 월급이 30% 정도 줄었고 부인은 간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사고 며칠 뒤 부인마저 암 수술을 받았다. 치료가 3년을 넘길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2007년 인명 구조작업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인 이도재 소방관(40). “이런 거 처음 보죠?” 7일 부천소방서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의족을 벗어 무릎까지만 남은 다리를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주물렀다. “멀쩡할 때보다 2∼3배 더 시려요.”

사고 후 3년이 지났지만 완치는 아직 멀다. 이제 치료비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오른쪽 종아리 살을 절단된 왼쪽다리에 옮겨 붙여 오른쪽 다리도 수술이 필요하다. 항생제를 자주 복용해 치아가 빠지고 신장이 약해지는 등 후유증도 심하다.

소방관들의 평균수명은 한국인 남성 평균보다 20세 정도 낮은 58세. 매년 300명 이상이 다치고 6명 정도가 순직하지만 생명수당은 월 5만 원. 공무상 부상에 대한 치료 보장 기간은 소방관도 일반 공무원과 차이가 없는 3년이다. 그나마 허리디스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소방관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한 만성 질환에 대해선 별다른 지원이 없다.

선진국들은 치료 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는다. 동국대 산업의학과 안연순 교수는 “미국은 소방관이 다치면 ‘케이스 매니저’가 치료 기간을 판단한 뒤 완치 때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

부상 소방관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게 있다. 김 소방관은 얼마 전 슈퍼에 갔다 경찰에 붙들렸다. “제가 마스크랑 모자를 눌러 쓰고 있으니까 누가 신고했나 봐요. 제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참….”

이 소방관도 사고 전 즐겨 가던 대중목욕탕에 가지 못한다. “여섯 살 된 아들이 하도 졸라서 한 번 갔죠. 주인이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장애인까지 온다’고 하더라고요. 저야 그러려니 하는데 아들놈이 막 울데요.”

임용된 지 5년이 안 돼 그만두는 소방관의 비율은 5명 중 1명꼴이다. 미국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가 의사나 과학자와 함께 최상위권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직업을 택한 게) 왜 후회가 안 되겠습니까. 그래도 소방관이란 게 참 멋있지 않습니까. 다들 살려달라고 후퇴할 때 전진하는, 남을 위해 몸을 불사른다는 게….” 그렇게 다치고도 속없는 이 소방관이 씩 웃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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