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술 행위자들이 많이 몰리는 서울 남산 반공건국청년운동기념비 주변. 이들 중 일부는 촛불을 켜놓고 꽹과리를 치는 등 요란하게 해 남산을 찾는 시민들과 마찰을 빚고있다. 서울시는 겨울철 산불 화재 위험 등의 이유로 무단 주술 행위에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남산에 불이 날까 걱정입니다!”
퇴근 후 조깅 하러 평소 서울 남산공원을 즐겨 찾는 직장인 심지환 씨(35). 지난달 4일에도 평소처럼 운동복 차림으로 오후 8시경 남산을 찾았다. 남산 케이블카 탑승구 인근에 위치한 반공건국청년운동기념비 근처를 내려오는 순간 심 씨는 그곳에 촛불 수십 개가 활활 타고 있는 광경을 봤다. 기념비 근처에는 4, 5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고 이들은 촛불 앞에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5일 후 심 씨는 그보다 더한 장면을 목격했다. 촛불 앞에 선 사람들이 징을 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던 것. 남산 한복판에서 이른바 ‘굿판’이 벌어지는 것도 놀랍지만 심 씨는 “바람 부는 쌀쌀한 날씨에 행여 촛불이 산에 옮아붙어 산불이라도 날까 걱정스럽다”는 글을 서울시청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다.
○ “굿이 어때서” vs “화재는 누가 책임”
남산 반공건국청년운동기념비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한 애국 청년들을 기리는 뜻으로 2001년 세워진 비석이다. 최근 이곳이 ‘주술 명소’로 알려지면서 주술인들이 각종 도구를 들고 와 주술 행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14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 반공건국청년운동기념비를 기자가 직접 찾았다. 영하 6도.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운동을 하는 시민들조차 드물었다. 그러나 1시간쯤 지난 오후 8시 검은색 패딩 점퍼, 털모자 등으로 무장한 사람 2명이 기념비 앞에 섰다. 요란한 행위는 없었지만 이들은 촛불 2개를 켜고 10분 정도 기도를 한 후 사라졌다. “인터뷰 좀 하자”며 곁으로 가자 이들은 촛불을 끄고 후다닥 사라졌다.
기념비 앞이 주술 명소가 된 것은 이곳을 담당하는 서울시 남산공원관리사업소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을 단속하는 박병구 주무관은 “주술인들 사이에서 이곳이 남산의 기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으로 입소문이 퍼졌다”고 말했다.
남산이 최근에 뜬 장소라면 종로구 무악동 인왕산 및 평창동 보현산신각 등은 이미 10년 전부터 ‘기를 받는 곳’으로 입소문이 난 대표 장소다. 종로구는 이들을 단속하기 위해 인왕산, 삼각산 지리를 잘 아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단속반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단속 효과는 그리 신통치 않다. 지난달 종로구의 ‘산불 조심 기간’에 이곳에서 주술 행위를 해 적발된 사람은 총 29명으로 2009년(34명), 2008년(30명)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 서울시, 과태료 부과 계획 검토
문제는 이들 중 일부가 촛불을 켜놓고 화려한 몸동작을 펼치다 보니 자칫 불이 산에 옮아붙어 대형 화재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속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산의 경우 공익요원을 두어 오후 10시까지 순찰하지만 주로 밤중에 주술행위를 하기 때문에 10시 이후엔 일일이 잡아낼 수 없는 상황. 단속 역시 호루라기를 불어 내쫓거나 꽹과리, 촛불을 압수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 사실상 단속 근거가 없기 때문.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등산객 및 지역 주민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치고 있어 단속을 강화하지만 ‘하지 말라’고 강하게 권고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갈수록 늘어나는 주술인들로 인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 푸른도시정책과 공원관리팀 측은 “‘도시 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49조 ‘도시 공원 등에서의 금지 행위’에 산속 주술행위 항목을 포함시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과태료 부과 징수의 경우 특별시장이나 광역시장이 자체적으로 심의해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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