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벌점을 우습게 여기면 대학 가는 길 ‘빨간불’

  • 동아일보

생활부 등에 남기도… 일정수준 넘으면 교내상서 제외 가능성
‘생활평점제’ 올 초중고 본격도입… 서울 고교의 80%가 시행

지난달 1일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체벌이 전면 금지되면서 대부분 학교에 체벌 대체 프로그램으로 생활평점제가 도입됐다. 이는 2011년부터 학생들의 상벌점 내용을 온라인에 입력해 관리하는 ‘디지털 생활평점제’로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 임은혜 happymune@donga.com
지난달 1일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체벌이 전면 금지되면서 대부분 학교에 체벌 대체 프로그램으로 생활평점제가 도입됐다. 이는 2011년부터 학생들의 상벌점 내용을 온라인에 입력해 관리하는 ‘디지털 생활평점제’로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 임은혜 happymune@donga.com
지난달 30일 서울의 한 고교 생활지도실. 생활지도담당교사와 이 학교 1학년 A 군(16) 간의 상담이 한창이었다. A 군의 벌점이 20점 가까이 누적된 탓에 상·벌점 관리가 필요했던 것. 벌점이 25점 이상 쌓이게 되면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생활개선 프로그램에 무조건 참여해야 하며 이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돼 추후 대학 입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생활지도담당교사는 우선 PC에서 상·벌점 관리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이후 ‘상·벌점 조회’ 메뉴를 선택해 A 군의 벌점 항목을 조회했다. ‘○월 ○일 지각 벌점 1점’, ‘○월 ○일 명찰미착용 벌점 3점’, ‘○월 ○일 수업시간 잡담 벌점 3점’과 같이 A 군이 벌점을 받은 항목과 날짜, 해당 벌점이 화면에 나타났다. 생활지도상담교사는 A 군이 벌점을 받은 항목 중 지각이 10회 가량으로 가장 많다는 점을 확인한 후, A 군의 반 친구 두 명에게 “등교시간인 오전 7시 50분보다 한 시간 이전인 오전 6시 50분부터 A 군에게 ‘모닝콜’을 해주라”고 부탁했다. 상점을 받아 벌점을 상쇄시킬 수 있도록 상점 항목 중 하나인 교내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이날 상담을 받은 A 군은 “지각이나 명찰미착용 등은 평소 사소하다고 여겼는데 이런 행동들이 누적돼 큰 문제가 될 뻔했다”면서 “모니터 화면에 나타나는 벌점 내용을 보면서 평소 학교생활 중 어떤 부분에 특히 소홀했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초중고교 학생들은 앞으로 학교생활에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 지난달 1일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체벌이 전면 금지된 이후 대부분 학교에 ‘생활평점제’가 본격 도입됐기 때문. 생활평점제란 학생들의 생활 하나하나를 평가해 상·벌점을 부여하는 일종의 체벌 대체 프로그램이다. 학교별로 정해놓은 상·벌점 항목에 따라 상점 항목을 준수한 학생에겐 상점을 부여하고 벌점 항목에 해당하는 행동을 한 학생에겐 체벌 대신 벌점을 부과한다. 일정 상점 이상을 쌓은 학생은 교내 표창장 등 혜택을 받는 반면 벌점이 일정 수준 이상 누적된 학생은 교사 상담을 거쳐 교내 봉사활동이나 성찰교실 등에 참여한다.

벌점 누적으로 인한 불이익은 대학입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벌점이 일정 수준 이상 누적된 학생은 학교에서 주는 교내 선행상, 봉사상 등의 수상자 후보에서 제외될 수 있기 때문. 일부 학교는 벌점 누적으로 인한 처벌 내용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기도 한다. 지각과 복장불량 때문에 대입 서류평가 및 면접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셈이다.

생활평점제를 도입·운영하는 학교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정영철 장학사는 “체벌 금지가 전면 시행된 이후 장학사 등을 통해 서울시내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중고교 중 약 70%가 체벌 대체 프로그램으로 생활평점제를 도입·운영 중”이라며 “특히 고교의 경우 이를 도입한 학교가 전체의 약 80%였다”고 말했다.

생활평점제는 당장 2011년부터 학생들의 상·벌점 내용을 온라인에 입력해 관리하는 방식인 ‘디지털 생활평점제’로 서울시내 초중고교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부 초중고교에선 서울시교육청이 시범 운영 중인 디지털 생활평점제 프로그램이나 학교에서 자체 개발한 상·벌점제 관리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도입·운영하고 있다. 또한 디지털 생활평점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학생들의 상·벌점 내용 문자메시지를 학부모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도 있다.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

정 장학사는 “현재 2011년 2월 개발완료를 목표로 디지털 생활평점제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며 “이후 서울시내 모든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점차적으로 프로그램 도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벌점 누적되는 바람에… 부반장 당선 한달만에 중도사퇴”
서울 강동고의 한 교사가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상벌점을 입력하는 모습. 강동고는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강동고의 한 교사가 온라인으로 학생들의 상벌점을 입력하는 모습. 강동고는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 사소한 행동에 받은 벌점 1점, 대학 입시에 영향 줄 수도

특히 평소 지각 등 출결이나 수업준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중하위권 고교생들에겐 생활평점제가 대학 합격에 ‘의외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교내 선행상, 봉사상 등의 수상자 후보에서 제외돼 ‘스펙’을 쌓을 기회조차 없어지기 때문. 심할 경우 학급 임원 자격을 박탈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서울의 한 고교에 재학 중인 1학년 B 양(16)은 올해 초 학급 부반장에 선출됐다가 한 달여 만에 부반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학기 초부터 받은 벌점이 누적돼 30점을 넘었기 때문. 학교 자체적으로 정한 ‘벌점이 30점 이상 누적된 학생은 1주일에 3∼5회 의무적으로 성찰교실에 참여해야 하며 학교 및 학급 임원인 경우 학생의 임원자격을 박탈한다’는 교칙에 따른 것. 중상위권 성적의 평범한 고교생인 B 양의 벌점 내용은 ‘수업 중 잡담(벌점 3점)’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벌점 5점)’ ‘등교시간 10분 이상 지각(벌점 1점)’ 등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B 양은 “평소 오전에 10분 정도 늦게 등교하거나 수업시간에 친구와 잡담을 해 받는 벌점은 많아야 3점이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서 “부반장 자격 박탈 사실이 학교생활기록부에 남아 대학 서류평가나 면접 등에서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추후 학생들의 상·벌점 내용을 온라인에 입력해 관리하는 ‘디지털 생활평점제’가 보편화될 경우 생활평점제가 입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 학교생활기록부 시스템과 연계돼 운영될 경우 상·벌점 내용이 고스란히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입되기 때문.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정책과 정영철 장학사는 “아직 상·벌점 관리 프로그램과 학교생활기록부를 연계해 운영하기엔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면서 “상·벌점 관리 프로그램이 안정적으로 도입된 이후에 상·벌점과 학교생활기록부뿐만 아니라 전출입 현황과 같은 학교정보와 관련된 모든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교사마다 다른 벌점 부여기준

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생활평점제 도입 이후 학생들의 생활 태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학생들의 생활 태도가 변하는 이유는 비단 벌점을 피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상점을 받기 위해 사소한 학교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상점을 많이 쌓아둘수록 학기 말에 선행상 등 학교장 표창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5년 전부터 자체적으로 생활평점제를 운영 중인 서울 덕원여고의 안숙희 교감은 “얼마 전 ‘학교 화단에 물주기 봉사활동 시 상점 1점을 주겠다’며 교내 봉사활동 지원자를 모집한 결과 무려 100명에 가까운 학생이 지원했다”면서 “생활평점제 도입 이후에 치마길이를 짧게 줄인다든지 교칙에 어긋나는 빨간색, 노란색 외투를 입는 학생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학교에서는 생활평점제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은 교사마다 상·벌점 부여 기준이 다르다는 것. 서울의 한 생활지도담당 교사는 “실제로 생활평점제 도입 이후 ‘○○교사는 수업시간 중 휴대전화를 사용해도 벌점을 주지 않았는데 다른 교사는 왜 벌점을 주느냐’고 항의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면서 “같은 이유로 벌점을 받은 학생 간에도 교사에 따라 부여하는 벌점 정도가 다르다는 것도 학생들의 불만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생활평점제를 도입해 시범 운영 중인 서울 강동고의 김용성 생활지도부장 교사는 “상·벌점을 부여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부여된 모든 상·벌점 내용을 입력하기 전 생활지도부 교사 간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특히 학생들이 민감하게 생각할 수 있는 벌점 내용에 대해서는 벌점을 부여한 교사뿐 아니라 학생들과도 직접 면담을 해 타당성 여부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 생활평점제란?

학생들의 생활을 미리 정해 놓은 항목에 따라 평가해 상·벌점을 부여하는 제도. 서울시교육청에서 권장한 체벌 대체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로 구성된 ‘생활평점제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협의를 통해 상·벌점 항목을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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