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어긋나” 부모가 수혈 거부… 2개월된 영아 숨져

  • 동아일보

병원 측에 수술을 하라는 법원의 결정까지 외면한 채 종교적 신념을 내세운 부모의 수혈 거부 탓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생후 2개월의 영아가 수술도 받지 못한 채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경찰은 부모의 수혈 반대행위가 유기치사죄에 해당하는지 검토하면서 곧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12일 서울 혜화경찰서와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9월 6일 대동맥과 폐동맥이 모두 우심실로 연결되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태어났던 생후 2개월의 이모 양이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고도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부모의 반대로 제때 수술 치료를 받지 못해 10월 말경 끝내 숨졌다. 이 양의 부모는 ‘부모를 대신해 서울아산병원이 수술을 대신 할 수 있다’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지만, 법원 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서울대병원으로 이 양을 옮겼고 결국 사흘 만에 이 양은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성경 레위기의 ‘피를 멀리하라, 피째 먹지 말라, 피를 먹지 말라’는 구절을 들어 수혈을 거부하고 있다.

이 양은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기 전인 9월 24일경 서울아산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왔으며 수혈이 필요한 ‘폰탄 수술’을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부모는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반대했다. 병원 측은 폰탄 수술의 1단계인 ‘노르우드 수술’의 환자 회복 가능성이 무수혈 방법으로 하면 5% 미만이지만 수혈 방법으로 했을 때에는 30∼50%라고 봤다. 또 폰탄 수술을 하지 않으면 이 양의 생존 가능 기간이 최대 3∼6개월이며 그 전에 생명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이 양의 부모는 폰탄 수술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믿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이 수술에 동반되는 수혈은 안 된다며 막아섰다.

급기야 서울아산병원은 이례적으로 의료진, 윤리학 박사, 법률고문 등이 참석한 윤리위원회를 열고 이 씨 부부를 상대로 10월 19일 서울동부지법에 진료업무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법원은 “자녀의 생명과 신체의 유지·발전에 저해되는 친권자의 의사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병원 측이 부모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이 씨 부부는 이를 피하기 위해 아예 서울대병원으로 딸을 옮겼으며 결국 이 양은 숨졌다. 이에 대해 이 양 부모의 변호인은 “수술을 반대한 게 아니라, 무수혈 심장수술을 잘하는 병원을 찾은 것”이라고 밝혔다.

부모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생후 2개월 된 영아가 치료도 받지 못하고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신생아의 생명권까지 저버릴 수 있는가’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이 양의 사례와 비슷한 사안을 두고 유기치사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1980년 자신이 믿는 종교 교리에 어긋난다며 장출혈 증세가 심한 11세 딸에 대한 수혈 치료를 거부한 어머니에게 유기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확정판결을 내렸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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