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에게 교원지위 준다]33년만에 폐지되는 시간강사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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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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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튼 7만 ‘보따리장수’… 구체적 권리보장은 불분명

시간강사 대책이 나온 건 올해에만 두 번째다.

6월 안병만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 대학 총장 세미나에 참석해 “비정년 강의 전담교수 제도를 통해 시간강사에게 최소한의 처우를 보장해 주겠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7월 이 발언을 토대로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했다.

이 개정안도 시간강사의 불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22일 전국에서 모인 시간강사 100여 명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전국비정규교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4대 보험 적용’, ‘생활 임금 보장’과 함께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오히려 불안정한 노동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였다.

시간강사 모임인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관계자는 “강의전담교수는 고용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5년을 넘을 수 없는 ‘비정규직’”이라며 “연구 참여 기회를 잃고 강의만 전담하는 반쪽짜리 교수가 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간강사 중 일부만 강의전담교수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들의 이날 결의문을 통해 “비정규교수 문제를 풀려면 교육 정상화의 논리와 함께 불안정한 노동 철폐의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며 “핵심 기조는 내실 있는 법적 교원 지위 쟁취”라고 밝혔다.

25일 사회통합위원회가 내놓은 개정안은 시간강사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도록 했다. 또 교과부 안은 교원의 범주에 기간제 강의전담교수만 포함시켰지만 사통위 안은 아예 강사를 교원으로 못 박았다. 사통위 안대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시간강사제도는 1977년 도입 이후 33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이에 따라 각 대학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던 채용 계약도 공개경쟁인사위원회를 통해 투명하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또 시간강사들도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교육과정 편성에 대한 권한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강사도 책임 연구자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사업의 연구지원비도 받을 수 있다.

○ “아직도 불씨 남아”

시간강사들은 아직도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비정규직교수노조 관계자는 “지금보다는 환경이 나아지겠지만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다”며 “임금과 법적 지위를 올린다고 해도 학교마다 시간강사에게 적용하는 복지나 교권 수준이 다르다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통위 안에 구체적인 재원 마련책이 없다는 점이다. 이번 안은 현재 평균 4만3000원 수준인 시간당 강의료를 2013년까지 8만 원으로 인상하도록 했다. 사립대는 1시간에 5000원인 연구보조비를 2만 원까지 증액해 처우 개선 인센티브로 지원해야 한다. 사통위는 내년에 교과부를 통해 국회와 협의하고 이후 교과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하면 예산 마련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교수노조 관계자는 “사립대에서 과연 이 기준으로 기존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채용하려 하겠느냐”며 “오히려 다른 편법을 동원하거나 시간강사를 대량으로 해고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선 대학에서 시간강사에게 교원 자격을 부여하는 대신 ‘초빙교원제’를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초빙교원제는 원래 유명 인사를 강사로 초빙하는 것이지만 시간강사의 교원 자격을 보장하지 않는 ‘제2의 시간강사’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교원 지위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한계는 분명하다. 교과부 관계자는 “무엇보다 신분을 보장받을 수 있어 처우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전임교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교수와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교수노조는 사통위 안을 검토·분석한 뒤 26일 오전 공식 의견을 발표할 예정이다.

○ “박사 양산 구조, 교수사회 폐쇄성이 문제”

교육 전문가들은 시간강사 문제가 인력수급의 구조적 결함에 기인한다고 입을 모았다. 시간강사가 열악한 환경에 놓인 가장 큰 이유로 ‘박사 과잉 공급’을 손꼽는다. 대학 교원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박사학위 소지자가 늘어나면서 일자리가 부족해졌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은 1999년 5586명에서 지난해 9912명으로 1.77배 늘었다.

한 대학 교수는 “미국 대학 4000여 개 가운데 제대로 된 대학원을 운영하는 학교는 5%인 200여 개에 불과한데 우리는 거의 모든 대학에 대학원이 있다”며 “취업난에 따라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을 많이 선택하는데 이들이 다시 갈 곳이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사회의 폐쇄성이 시간강사 문제의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울산대는 현 정부 초대 교과부 장관 출신인 김도연 총장이 부임하면서 2년 전부터 ‘교수 상시 초빙제’를 도입했다. 한 교수가 정년퇴임을 해야 교수를 채용하던 구조에서 우수한 자원이면 언제든지 채용할 수 있도록 바꾼 것. 현재 울산대 홈페이지에는 1200여 명이 포트폴리오를 올린 상태지만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미미하다.

김 총장은 “처음에는 교수들이 제자 30∼40명을 한 번에 데려온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기우(杞憂)였다. 우리나라 교수들은 자기가 진짜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파이를 나눠 먹는다’고 생각해 거부감을 느낀다”며 “연구비 3000만 원이 생기면 새로운 교수 한 명을 채용하자고 하기보다 우리끼리 조금 더 일하고 그 돈을 나눠 갖자는 게 교수사회의 풍토”라고 꼬집었다.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도 “전임교수에 대해서는 1970년대부터 각별하게 배려해 온 결과 이들의 대우는 국제적 기준을 봐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 반대급부로 시간강사들은 햇볕을 받지 못하는 응달로 밀려났다”며 “우리 사회가 공정한 사회가 되려면 사회 최고급 인력인 이들에게 햇볕을 비출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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