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그랬구나, 이해한다”… 이 한마디가 자녀의 마음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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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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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금촌고 ‘좋은 학부모 교실’ 강의 “아하~” 연발
공부 스트레스 중고생 39%가 “최근 1년간 우울감에 시달렸다”
‘해라’보다 ‘어떻게 해야할까’… 질문하기 대화법 바람직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자녀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시험지 뒷면에도 문제가 있는 걸 보지 못해 절반 이상을 풀지 못했다’고 말하면 자녀에게 뭐라고 하시겠어요?”(계정숙 소장)

“다시는 실수하지 않게끔 호되게 혼내야죠.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냐면서….”(A 학부모)

“이해가 안 되겠죠. 학교 내신이 얼마나 중요한데 그런 엄청난 실수를 하다니…. 제가 더 속상한 마음에 크게 화를 낼 것 같아요.”(B 학부모)

19일 오후 5시 반 경기 파주시 금촌고 시청각실. 계정숙 위(WE)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의 질문에 자리에 앉아있던 학부모 50여 명이 일제히 술렁였다. 자녀가 시험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던 일이 떠올랐는지 “에휴∼”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는 학부모도 있었다. 계 소장이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혼을 내기에 앞서 ‘시험을 망친 내 자녀는 얼마나 속상할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녀의 기분을 우선 이해해주고 난 뒤 타이르듯 자녀에게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주세요. 자녀가 학업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부모의 충고를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곧바로 학부모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차라리 혼내는 게 아이가 더욱 반성하는 계기가 되진 않을까요?” “예전에 좋은 말로 타이른 적이 있는데 아이가 ‘우리 엄마는 공부를 못해도 혼내지 않으니까 성적이 좀 떨어져도 괜찮아’라며 가볍게 생각하더라고요. 어쩌죠?”》
19일 오후 5시 반 경기 금촌고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좋은 학부모 교실’ 강의현장. 이날 강의에서 계정숙 위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은 “자녀를 꾸중하기 전에 자녀의 기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일 오후 5시 반 경기 금촌고 세미나실에서 진행된 ‘좋은 학부모 교실’ 강의현장. 이날 강의에서 계정숙 위 상담코칭지원센터 소장은 “자녀를 꾸중하기 전에 자녀의 기분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 금촌고가 진행하는 ‘좋은 학부모 교실’ 강의현장이다. 12일부터 학부모 50여 명을 대상으로 시작된 이 강의는 1주일에 1회, 총 8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금촌고 좋은 학부모 교실의 운영 목적은 자녀와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부모들에게 올바른 대화법을 알려주는 것. 이를 통해 학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 단절이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다.

두 번째 시간이었던 이날 강의에선 ‘통하는 부모, 자녀되기’를 주제로 자녀와 현명하게 대화하는 법을 소개했다. 계 소장은 학부모들에게 “자녀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 대화 시 ‘질문하기 대화법’을 사용할 것”을 권했다. 예를 들어 시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 자녀에게 “시험 점수를 올릴 수 있게 공부를 더 열심히 해”라고 말하기보다 “다음 시험에는 성적을 올리고 싶니”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으며 자녀의 답을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런 대화법을 통해 자녀의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고, 자녀가 스스로 반성할 기회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게 계 소장의 설명이다.

이 학교 김명동 교장은 “지난 학기에 자녀와의 대화기법이란 일회성 학부모 강연을 진행했을 때 학부모들이 크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같은 주제로 심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라 판단했다”면서 “가정에서의 원활한 소통은 학생들의 학업이나 학교생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5일 국회 교육과학위원회 김춘진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2008년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우울감’(2주 내내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끼는 상태)을 경험한 중·고교생 비율이 38.8%에 달했다. 학생들이 학교생활과 학업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고민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대상이 없다는 방증인 셈. 이날 강의를 들은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평소 자녀가 우울해 보여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답답했던 경험이 있어 강의를 듣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좋은 학부모 교실 강의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 학교 1학년 김태이 군(16·경기 파주시)의 어머니 조희정 씨(48)는 “처음엔 아들과 대화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지 않았나 싶었지만 아침에 아이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조금씩 늘고 있다”면서 “아이가 짜증을 낼 때, 갑자기 말수가 줄었을 때 어떻게야 할지 몰랐는데 이런 고민들이 조금씩 해결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벌써 강연의 효과를 톡톡히 본 학부모도 있다. 이 학교 3학년 이서진 양(18·경기 파주시)의 어머니 여미정 씨(41). 평소 여 씨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과 매번 다퉜다. 딸이 ‘공부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자주 짜증을 냈기 때문. 여 씨는 그럴 때마다 ‘왜 짜증을 내느냐’ ‘너만 공부하느라 힘든 건 아니지 않느냐’라며 딸을 다그쳤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나중엔 딸과 대화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딸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느끼던 여 씨는 ‘좋은 학부모 교실’에 참가하기로 결심했다. 이후 여 씨와 딸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강의를 듣고 ‘그동안 내 대화법이 좋지 않았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강의에서 배운 대로 딸의 얘기를 최대한 듣고 명령하기보단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딸이 짜증을 내면 눈을 맞추며 ‘그랬구나’ ‘힘들겠다. (네 맘을) 다 이해한다’라고 답하며 얘기를 들어줬어요.”(여 씨)

결과는 놀라웠다. 어느 날 방에 들어가 공부하던 딸에게서 ‘엄마 짜증내서 미안해’란 문자메시지가 온 것. 여 씨는 “대화가 많아진 동시에 딸의 학습태도도 좋아지고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고 있다”면서 “먼저 아이를 이해하려는 나의 모습이 여러 방면에서 딸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주=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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