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3부]<8>대-중소기업, 상생할 수 있을까

동아일보 입력 2010-09-01 03:00수정 2010-09-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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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업체, 乙이 이익냈다고 납품가 깎아… 우린 丙서 메우죠”
지상 좌담: 中企대표-실무자 6명이 털어놓은 현장
대·중소기업 양극화는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대책이 나왔다. 대기업 총수들은 청와대에서 상생(相生)을 약속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상생협약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그때 내가 입바른 소리를 했지요. ‘대통령과 회장님들이 상생을 얘기했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라고. 회장님들이 총론적으로 상생을 말해도 그 영향이 일선 구매담당이나 임원의 업무행태에까지 미치기는 어렵거든요. 임원은 ‘구매가격 절감’, 이런 목표를 세웠을 텐데 그 목표를 누가 바꾸나요? 상생,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월간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상생 관행의 정착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이 화두다. 대기업들의 상생 방안 발표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도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정부가 ‘상생의 돗자리’를 폈지만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중소기업인은 찾기 어렵다.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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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팀은 금속, 주물, 공구, 플라스틱제조업 등에 종사하는 중소기업 대표 4명과 대기업 담당 실무자 2명에게 솔직한 의견을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 회사 이름도 숨겨달라고 했다. 이들이 털어놓은 말을 ‘집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기사 중 굵은 글씨는 전문가들이 내놓은 평가와 대안이다.

―어려운 가운데 용기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상생이 이슈가 되니까 방송사에서도 TV토론에 나와 달라고 요청이 많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대표로는) 아무도 안 나갑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보복이 무서운 거죠.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선생님께 피해신고 못하는 거랑 비슷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니까….”

“우리는 직접 (대기업과) 거래하는 당사자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꺼려지네요. 혹시라도 안 좋은 일을 겪을까봐…. 꼭 익명 보장해 주셔야 합니다. 동아일보 기자라고 하셨죠? 무슨 부에 계시죠?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요?”

―대·중소기업 상생이 큰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만….

“그동안 중소기업은 서러움과 불이익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말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대통령 생각이 좀 바뀌어서 다행입니다. 중소기업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위로가 됐습니다.”

“어쨌든 대기업은 사상 초유의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어요. 이 피눈물을 좀 알아줘야 합니다. 중소기업은 폭발 직전입니다. 실질적으로 동반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경험을 솔직히 말씀해 주시지요.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대기업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차 납품회사 가운데 이익을 낸 곳이 있으면 다음번에는 납품가에서 이익분을 뺍니다. 그러면 1차 납품회사는 2차 납품회사의 납품가를 깎아 그 손실을 만회합니다.”

“대기업은 해외에서 경쟁을 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납품물량을 100개에서 2000개로 늘려 줄 테니 가격을 낮춰 자생력을 키우라고 합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단가를 낮춥니다. 경영혁신도 할 만큼 해 봤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숫자 정해놓고 몇 % 깎으라는 식이면 정말 힘듭니다.”

“(납품단가를) 매년 3∼5% 깎으라고 하는데 원…. 부자재 가격은 올라가는데 깎을 곳이 어디 있습니까. 우린 3년 동안 회사 직원들 임금도 못 올려주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회사 분위기도 안 좋고 직원들은 이탈하고…. 솔직히 이런 도둑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말할 데도 없고, 불량배한테 당하고 사는 심정입니다.”

“대·중소기업 차이를 인정 못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근데 너무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대기업 말단 직원 월급이 우리 중소기업 사장보다도 더 많습디다. 솔직히 몇조 원씩 이익 내면서 중소기업은 조금만 신경 쓰면 해결되는 문제인 만큼 대기업이 나서줘야 합니다.”

→ 환율이나 유가 상승으로 단가 상승 요인이 생기면 상호 조정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중소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게 가장 문제다. 대기업이 구두로 발주한 뒤 임의로 주문을 취소하기도 하고, 훗날 문제가 되면 담당자를 교체한 뒤 ‘전임자 일이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선진화가 가능하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불공정 결제 관행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1, 2차 하청회사에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종이어음이 10%, 전자어음이 30%, 나머지는 모두 현금으로 받고 있습니다. 현금 결제는 대부분 30일 안에 이뤄지지요. 그런데 어음거래가 관행이다 보니 현금거래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현금으로 받게 되면 통상 가격의 3∼4%를 깎아줘야 합니다. 대기업만 해도 안 그런다고 하던데, 1차 납품회사가 2차 납품회사에 결제할 때는 이렇게 합니다. 어음도 받으면 만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자금이 워낙 안 도니까…. 보통 은행에서 할인을 받는데 연 7% 정도 이자율 수준이지요. 저희 매출이 한 달에 8억∼9억 원 정도인데, 이렇게 은행에서 어음을 할인받거나 현금결제 시 깎아주면 들어가는 비용이 2000만∼3000만 원 정도 됩니다. 그냥 ‘수수료’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허공으로 날리는 비용도 쌓이면 부담이 크죠.”

“2차 납품업체입니다. 제가 느끼기엔 2차 납품업체 이하 결제는 거의 어음이에요. 기간도 보통 3∼4개월, 심하면 8개월입니다. 우리는 ‘아무래도 좋으니 결제만 해 달라’고 말하는데 결제조차 잘 안 됩니다. 대기업에서 원자재를 받을 때는 물건을 받기도 전에 현금을 입금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문량보다 물건이 적게 올 때도 있어요. 항의했다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가격을 올릴 때는 단가 인상 협의도 없이 갑자기 올려서 대비도 못합니다.”

“앞으로 정부가 2, 3차 부품회사까지 대금 결제할 때 현금 주라고 한다니까 좀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결제대금은 제대로 받는 편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길게는 두 달 있다가 주는 대기업도 있습니다. 원자재는 현금으로 사고, 물건 값은 두 달 있다 받으면 이자비용만도 얼마입니까. 대기업들이 원자재 팔 때는 물건도 주기 전에 선(先)입금으로 현금 받아 갑니다. 그러면서 납품업체에는 묵혔다 주고…. 최근에는 물건을 맡기면서 ‘팔아 달라’는 일도 당했습니다.”

―대기업도 사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대기업에서 사장이나 임원 평가를 실적 위주로 하기 때문입니다. 실적이 좋아야 승진도 하고 계열사 사장도 할 수 있는데 실적은 곧 이익 아닙니까. 이익을 내려면 납품단가를 깎을 수밖에 없어요.”

“어떤 대기업은 얼마나 가격을 낮춰서 구매했는지에 따라서 구매담당 임원한테 인센티브를 준다고 합니다. 결국 대기업 임원 스스로 승진하고 월급 받으려면 단가를 깎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납품단가연동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대기업 구매담당 임원들도 이걸 반대할 이유는 없어요. 근데 실제 시행하려고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섣불리 도입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에 납품단가를 올려준다고 칩시다. 왜 얘네만 올려 주느냐는 식으로 해당 임원이 오해를 받기 십상이지요. 그러다 보니 아예 안하는 거지요.”

→ 대기업이 구매담당 임원을 평가할 때 원가절감 실적만 주로 보는데 평가 항목이 확대되어야 한다. 원가라는 단일 지표가 아니라 기업 나름대로 가치목표를 갖고 평가해야 한다. 하청업체와의 기술개발 같은 것도 임원 평가 항목에 들어가야 한다. 눈앞에 있는 목표만 좇아서는 상생할 수 없고 좀 더 긴 시선을 갖고 봐야 한다. (곽수근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어디에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하겠습니까.

“대기업 계열사 사장이나 구매담당 임원이 중소기업 사장과 머리를 맞대는 걸로는 실패합니다. 결국 이들도 자신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대기업 총수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룹 총수는 실적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기업 이미지와 사회적 책임을 염두에 두니 관행과 분위기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갖고 홀로 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주목 역할을 해 줘야 합니다. 예전엔 단체수의 계약제도 같은 정책이 그런 역할을 했는데 이것도 2007년부터 폐지됐지요. 이런 제도가 많아져야 중소기업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자생할 수 있습니다.”

“상도덕이 뿌리를 내려야죠.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너무 심하게 하면 스스로 창피해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법이나 정책을 통해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나 컨설팅, 교육 등은 금방 효과가 나지만 ‘관계’의 문제는 다르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계약서 안 쓰는 관행을 바로잡는 등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 것이다. 모기업이 2, 3차 협력업체까지 다 끌고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전인우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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