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북한을 방문한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 목사(60)가 20일 북한 인사의 환송 속에 판문점을 통해 남한으로 귀환했다. 하지만 판문점을 넘는 순간 경찰 등에 체포돼 경기 파주경찰서로 연행된 뒤 북한에서의 행적 등을 조사받고 있다.
○ 북한 인사 환영 속 귀환
조선중앙통신은 한 목사가 이날 오후 3시 판문점을 넘기에 앞서 안경호 북한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위원장 등 북한 인사들과 포옹을 하며 작별인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한 목사는 200여 명의 학생과 근로자들이 도열해 ‘조국통일’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우리 민족끼리 통일평화 만세’라고 외치면서 판문점을 넘은 뒤 곧바로 우리 경찰에 체포됐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날 오전 평양시 통일거리 입구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앞에서 안 위원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한 목사를 환송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 목사는 “북녘 동포들을 만나 자력갱생으로 기적을 낳는 모습을 보았고 평화통일의 열망을 느꼈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한 목사는 귀환에 앞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에 자신의 방북 배경과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는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해 팩스 또는 e메일로 남한에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목사는 편지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원천적인 도의적 책임은 6·15와 10·4(정상회담)를 부정하고 긴장을 조성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북녘은 결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북한을 옹호하기도 했다. 한편 보수단체와 진보단체는 한 목사 귀환에 맞춰 이날 일제히 임진각 일대에서 방북을 규탄하거나 환영하는 집회를 열었지만 당초 우려했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보수, 진보 단체들은 한 목사가 오후 3시경 판문점을 통해 귀환해 압송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각각 해산했다.
○ 국보법 위반 적용될 듯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이날 오후 5시부터 8시경까지 파주서에서 한 목사가 북한에서 한 활동과 발언 내용, 입북 경위 등을 조사했다. 그러나 한 목사가 묵비권을 행사해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합동조사단은 한 목사를 조사하고 이르면 21일 또는 22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한 목사는 방북 기간에 북한 체제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선 원색적인 비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한 목사의 방북 사건은 통일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단순한 절차법 위반의 차원을 넘어 국가보안법상 주요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는 것이 공안당국의 시각이다.
한 목사는 6월 22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함 희생 생명들의 살인 원흉” “결국 (천안함 사건은) 미국과 (지방)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이명박 정권의 합동 사기극”이라고 주장했다. 한 목사가 이 발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한 목사가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북한 주장에 동조하려고 한 발언으로 드러난다면 국가보안법상 ‘동조죄’(7조)가 적용될 수 있다. 한 목사가 이 기자회견에서 “남녘 조국, 남녘 동포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어른을 공경하는 겸손한 자세, 풍부한 유머, 지혜와 결단력, 밝은 웃음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 대목은 국가보안법상 ‘찬양죄’가 적용될 수 있다.
한 목사가 방북한 것은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한 것이 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상 ‘탈출죄’(6조)가 된다. 그런데 한 목사의 방북 목적이 ‘북한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밝혀지면 ‘특수탈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임진각=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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