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원장이 직접 재판한다

  • 동아일보

구욱서 서울고법원장 “판사 부족… 신속 판결 위해”
민사 항고사건 재판장 맡기로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 싸워야 하는 것처럼 판사는 재판을 하는 게 본업이죠.”

재판 현장에서 물러나 법원 내의 사법행정권자 역할을 하는 고등법원장이 직접 재판을 맡기로 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구욱서 서울고법원장(55·사법시험 18회). 서울고법에 따르면 구 원장은 11일부터 민사 항고사건을 담당하는 민사50부의 재판장을 맡기로 했다. 2006년 8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다 서울남부지법원장으로 승진하면서 일선 재판 업무에서 손을 뗀 지 4년 만이다.

지방법원장의 경우 개명(改名)신청이나 성별정정신청 같은 비송(非訟·쌍방 당사자가 없는 사안)사건을 처리하지만 고법원장이 직접 재판을 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더욱이 전국 고·지법원장 가운데 서열이 가장 앞서는 서울고법원장이 재판을 맡기로 한 것은 미국의 원로 법관들이 ‘시니어 법관’으로 임용돼 재판업무를 맡는 것을 연상케 한다.

구 원장이 재판에 나서기로 한 것은 지난달 30일 단행된 정기인사에서 서울고법의 부장판사 3명이 지방법원장으로 승진하면서 재판장이 부족해진 데 따른 것. 구 원장은 3일 “법원의 신속한 판단을 기다리는 사건이 많은데 사건 수가 많다 보니 판사들이 빨리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나라도 사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면 당사자들에게 신속한 결정을 내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감독관의 입장이 아니라 같이 재판을 하는 입장에 서면 후배 판사들과도 더욱 소통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 원장의 뜻에 따라 서울고법은 기존의 민사합의재판부 1개를 없애는 대신 구 원장이 배석판사 2명과 함께 새로 구성되는 민사50부의 재판장을 맡는 사무분담안을 확정했다. 항고사건은 서면으로 심리하는 경우가 많고 필요하면 배석판사가 재판장을 대신해 신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법행정을 처리해야 하는 법원장직과 병행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서울고법은 전국의 5개 고등법원 가운데 최대 규모여서 사법행정업무만 해도 부담이 작지 않은데 구 원장이 신속한 사법서비스를 위해 몸소 재판업무까지 맡기로 한 것은 사법부의 국민 신뢰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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