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존을 향해/2부]<3>권력 앞에만 서면… 왜 법봉이 뿅망치로…

동아일보 입력 2010-07-30 03:00수정 2010-07-3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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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반칙하는 심판 - 소장 판검사가 털어놓는 법조계 자화상
《법원과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갈등을 해소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위임받은 ‘국가 공인 심판’이다. 하지만 한국 법원과 검찰의 현주소는 ‘반칙하는 심판’ 이미지가 더 강하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빠져나가고 힘없는 사람만 처벌받는다는 불신이 많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나 법원의 판결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러다 보니 법원 검찰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심화시킨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10년 남짓 법원과 검찰에 몸담아온 ‘젊은’ 판사와 검사에게 그들의 진솔한 고뇌를 들어봤다. 두 사람은 익명을 요구했으며 각자의 인터뷰를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한다는 데 동의하면서 각각 취재에 응했다.》


■ 뿌리깊은 전관예우


―A 판사=이런 주제를 놓고 마주 앉은 것 자체가 부끄럽네요.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사법연수원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꿈이 컸었는데….(한숨) 법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갈수록 차가워지는 걸 느낄 때마다 판사의 길을 택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B 검사=제가 할 얘깁니다. 검찰이 밤을 새워가며 수사하고 고민을 거듭해 결론을 내려도 국민은 수사 결과를 잘 믿지 않고 ‘정치적 배경이 있다’느니, ‘봐주기 수사’라느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합니다. 이젠 그런 반응이 나와도 ‘그러려니’ 하고 말 때가 많아요.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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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전관예우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10년 전 정도만 해도 법원에는 판사 출신이 변호사로 개업하면 ‘처음 맡은 형사 사건 몇 건은 피의자가 구속 사안이라도 구속영장을 기각해준다’는 묵시적 룰이 있었던 게 사실이니까요. 지금은 이런 일은 거의 없지만 재판부와 가까운 변호사를 선임하면 재판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더군요. 저의 경우만 봐도 소송 당사자가 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오는 걸 봅니다. 그럴 때면 답답하고 막막해져요.

―검사=전관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해서 기소해야 할 사건을 무혐의 처리할 순 없죠. 하지만 구속영장을 청구할 사안인데 불구속 상태로 기소한다든지, (벌금형으로 기소하는) 약식 사건에서 벌금액수를 줄여주는 사례는 여전히 있습니다. 사실 일반인에게 인신 구속은 그 자체로 무거운 형벌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구속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법원에서의 유·무죄만큼이나 당사자에겐 중요한 문제죠. 그래서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가 설 자리가 생기는 겁니다.

―판사=법원도 비슷합니다. 대부분의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서 판결합니다. 하지만 일부 판사가 자신과 가까운 변호사가 선임된 사건 등에서 법과 양심 이상의 ‘재량권’을 발휘하고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심지어 자신이 맡은 사건뿐 아니라 다른 재판부에까지 청탁 전화를 하는 판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자괴감이 듭니다.


■ 정치검찰-튀는 판결 논란


―검사=국민이 검찰 수사를 믿지 않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가 정치 상황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면 그 이전 정권 인사나 그들과 가까웠던 기업 등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지고, 다시 정권 말기로 접어들면 끝나가는 정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으니까요. 검찰이 누구를 수사 대상으로 삼느냐 하는 것 자체가 나중에 혐의 유무가 드러나는 것과는 별도로 당사자에게 엄청난 부담입니다. 민감한 사건일수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판사=‘정치 검찰’ 시비를 끊으려면 무엇보다 권력이 검찰을 함부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검찰은 부패나 폭력 등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주는 아주 중요한 기관이잖아요. 어찌 보면 참 잘 드는 칼과도 같죠. 마땅한 대체재도 없습니다. 따라서 검찰 권력을 견제할 객관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어요. 비록 탐나겠지만 권력자는 욕심을 자제하고 검찰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선진화 아닙니까.

―검사=검찰 인사의 공정성도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검찰의 권한이 크다 보니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이나 정무직 장관이 인사권을 갖는 건 당연한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최소한 인사 때마다 특정 대학이나 지역 출신이 중용됐다거나, 누구는 누구 사람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일이 반복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판사=최근 이른바 ‘튀는 판결’ 얘기도 좀 하죠.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편향된 판결이나 법 해석을 잘못해 엉뚱한 판결을 한다면 지적을 해야 하겠죠. 하지만 그것이 너무 크게 논란이 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듭니다. 모든 법관이 똑같은 판결을 내린다면 그게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것 아닐까요. 상급심의 판단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1심 판결만을 가지고 “법원이 편향됐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법원의 자체 개혁안도 허술한 부분이 있더군요. 가령 법원장 회의에서 ‘튀는 판결을 막기 위해 1, 2심 교류를 활성화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오자 당장 대법원에서 예산 지원을 한다더군요. 얼마 전 1, 2심 판사 회의에 갔더니 참가비 명목으로 돈을 주던데 ‘이거 받고 튀는 판결하지 말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존심이 상하더군요.


■ 부끄러운 ‘스폰서’


―검사=도덕성 회복도 급한 문제죠. 최근 ‘검사 향응·접대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외부인과의 유착은 확실히 근절해야 합니다. 부끄럽지만 스폰서 검사 논란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젊은 검사 가운데도 변호사나 외부인과 부적절한 스폰서 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판사=대법관, 법원장, 고법 부장판사 등 고위 법관들이 퇴임 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것도 단계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례를 만들던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써낸 서류를 받아보면 판사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법원의 사정(司正) 기능도 강화해야 합니다. 가령 법관이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다는 소문이 퍼질 때쯤엔 법원행정처의 감찰부서는 이미 그 같은 일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구설에 올랐던 이들 중에 실제로 감찰을 받거나 징계를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소수의 판사가 물을 흐리지 못하도록 감찰 기능을 강화하고, 징계 절차를 좀 더 활성화해야 합니다. 그게 살 길입니다.

―검사=일반 국민과 밀접한 민생 사건을 맡는 형사부 검사가 권력형 비리나 정치인 수사 등을 담당하는 특별수사부 검사들보다 상대적으로 홀대받는 검찰 특유의 문화도 바뀌어야 합니다. 평가의 잣대가 달라진다면 정치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무리한 검찰 수사 논란은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 겁니다. 변호사가 사건을 맡은 수사검사를 직접 만나는 것과 관련해서도 검찰 내부에서 일정한 규칙을 만들어 시행한다면 전관예우 논란도 상당부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판사=법원이든 검찰이든 눈높이를 법조계 내부가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 맞춰야 합니다. 바깥 시선이 어떤지, 상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법조인 수가 늘어나면서 판사, 검사로서 자질이 부족한 법조인도 늘어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걸러내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해 보입니다. 우리의 이런 논의가 사법부와 검찰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검사=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서로 힘든 얘기 나눴습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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