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학교안전 SOS/“혼자 삭이고 고민하지마!… ‘또래 상담반’이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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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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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예방-해결 직접 나서자”
15명이 똘똘… 상담자격증까지 따
교사들보다 더 빨리 위험징후 파악
“같은 학생 입장서 실질적 도움 줘요”


《지난달 17일 서울 서대문구 신연중학교 3학년 ○반 교실. A 양(15)이 학교 ‘또래상담반’에서 활동 중인 B 양(15)을 찾아왔다.
A 양은 B 양에게 “평소 ‘절친’(절친한 친구)인 C 양의 장난이 점점 심해진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하다 웃으며 어깨 등을 가볍게 때리다가 이제는 갑자기 다가와 아무런 이유 없이 몸을 세게 때린다는 것.
A 양은 “친구의 장난이 폭력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조금씩 스트레스가 된다”며 “심지어는 C 양을 따라서 내게 장난을 치는 친구도 생겼다”고 말했다.
B 양은 C 양을 찾아가 A 양의 고민을 전했다. 그리고는 ‘A 양에게 장난을 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혹시 A 양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실을 아는지’ ‘왜 이런 오해가 생겼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C 양과 얘기를 나눴다.
행여 얘기를 듣는 C 양 스스로가 ‘폭력을 가한 학생’으로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화했다.
C 양은 B 양에게 자신의 행동은 단순히 친근감의 표현이었으며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고 A 양을 찾아가 오해를 풀었다.》

학생들이 주체가 돼 스스로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중3 나이의 청소년들이 ‘나를 흉본다’는 이유로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내다버린 사건도 있었다. 이런 엽기적인 사건 소식을 접한 학생들 사이에서 ‘이젠 학생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교나 학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서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다.

신연중학교 또래상담반이 대표적인 경우. 올해 활동을 시작한 또래상담반은 여학생 15명이 뜻을 모아 교사의 도움으로 만든 단체다. 상담반 학생들은 친구들에게 보다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상담을 해주려는 목적으로 올해 청소년상담센터에서 또래상담자격증을 받았다.

또래상담반 학생들은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실제 학교폭력을 겪고 있는 친구들의 상담을 진행한다. 친구들이 상담하러 오기를 그저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평소 교실생활을 주시하면서 ‘혹시 작은 다툼이 학교폭력으로 발전될 여지는 없는지’ ‘특별히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은 없는지’를 파악한다. 만약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해당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다툼을 해결하고 폭력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 주력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폭력 예방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또래상담반에서 활동하는 학생회장 정혜원 양(15)은 “실제 학교폭력은 친구들 간의 작은 다툼이나 장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위험징후’들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는 데는 선생님들보다 주위 친구들의 역할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할 때도 같은 학생의 처지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 학생회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활동을 진행한다.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1일 오전 8시 교문에선 학생회 임원진 등이 ‘폭력을 예방하자’란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걸고 다른 학생들의 등교를 지도했다. 학생회 임원진과 안전자율부원을 중심으로 한 학생들은 매달 1회 ‘학교폭력 예방 어깨띠 캠페인’을 진행한다. 학교폭력 예방이 필요함을 알리는 문구가 적힌 어깨띠를 두르고 친구들에게 알리는 프로그램. 올해 3월 학생회가 ‘학교폭력 예방 및 생활안전’이란 주제로 회의를 진행하던 중 연중 프로그램으로 결정한 것이다.

이 밖에도 학생들은 학교폭력 예방에 대한 표어 짓기 대회, 포스터 그리기 대회, 만화 그리기 대회를 열기로 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학생들이 체감하도록 하기 위해 수상 작품은 학교 복도나 게시판에 전시된다. 또 학생회 예산을 사용해 ‘다정한 친구, 괴롭힘 없는 학교, 우리 함께 만들어요’란 문구가 쓰인 표지판을 만들어 계단마다 부착했다.

학생회 안전자율부장을 맡은 3학년 민재우 군(15)은 “학생회에 소속된 학급 임원들이 아직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1학년과 함께 이들 표어와 포스터를 보면서 학교폭력 예방에 대해 대화한다”고 했다.

매달 학생회 회의시간에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토론시간을 따로 정해놓고 ‘학급에서 어려움을 겪는 친구는 없는지’ ‘선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후배는 없는지’ ‘최근 친구 간 다툼은 없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전 학년이 공유한다. 이는 특히 선후배 간 일어나는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2학년 부회장인 한창훈 군(14)은 “1, 2학년은 3학년에게 학교폭력을 당해도 ‘혹시 더 큰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까’란 걱정에 선생님께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학생회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생활지도부장인 최상철 교사는 “매 분기마다 ‘학교폭력 피해실태 조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하는데 학기 말이 되면 학기 초에 비해 폭력발생 건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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