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자료 전면 공개하라” 4개 야당 대표와 13개 시민·종교단체 대표들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천안함 침몰 사건 관련 핵심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정 국민참여당 대표, 송영오 창조한국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이종승 기자 ☞ 사진 더 보기
천안함 침몰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민군 합동조사단은 20일 발표할 최종 조사결과 보고서에 “침몰 해역에서 어뢰 스크루 파편을 찾아냈으며 스크루의 제조국은 중국과 러시아 중 하나”라는 내용을 담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7일 “합조단은 이 파편을 결정적인 근거로 삼아 최종 보고서에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취지의 표현을 넣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한국 군함에 어뢰를 발사할 세력은 북한밖에 없다는 내용이 최종 보고서에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합조단의 이 같은 결정은 군 당국이 최근 서해에서 확보한 금속 파편과 북한군이 소유한 어뢰 스크루의 성분 유사성 검토가 마무리되면서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합조단은 최종 보고서에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소행임을 밝힐 근거로 △스크루 파편 △어뢰 알루미늄 조각 다수 △연돌(굴뚝) 내부에서 확보한 화약 성분 등을 제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번 결과 발표 이후에도 이 파편이 나온 어뢰의 제조 시점과 유통 경로 등 확보 가능한 모든 정보를 외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파악하는 작업을 계속할 방침이다.
한편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를 사흘 앞두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 진보적 운동권 인사들은 관련 자료의 전면 공개를 요구하면서 공신력 있는 증거 없이는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잇달아 천명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창조한국당 송영오, 국민참여당 이재정 대표 등 야당 지도부와 참여연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진보성향 단체 인사들은 17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명확한 증거의 공개, 국제적 공인이 없는 섣부른 결론은 국민적, 국제적 불신과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조사 결과 발표와 함께 관련 자료를 전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野, 北소행 신중론 → 조사 불신론… ‘천안함 북풍’ 차단 나서
정 대표는 특히 “공신력 있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조사는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며 “조사 결과 발표와 대통령의 특별 담화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무능한 행태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며 △대통령 사과 △국방장관 합동참모의장 해군참모총장 합참작전본부장 해군작전사령관 제2함대사령관의 즉각 파면 등을 요구했다. 회견에는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김홍진 신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백낙청 한반도평화포럼 대표 등이 배석했다.
민주당 천안함 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장인 김효석 의원도 이날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할 천안함 조사 결과는 사건 당사자인 군이 주도하는 ‘관제조사’로서 인정할 수 없다”며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원점에서부터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경기지사 단일 후보인 유시민 후보는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의 북한 어뢰 공격설은 사실적 근거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유 후보는 11일에도 “폭발에 의한 침몰로 보지 않는다. 어뢰설 기뢰설 버블제트 등은 억측과 소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정동영 의원도 17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이 사실이라고 해도 명명백백히 우리 정권의 안보 문제”라고 주장했다.
민주당과 재야 운동권 그룹이 합조단이 발표를 하기도 전에 발표 내용을 신뢰하지 않을 것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나선 데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이 내려질 경우 지방선거에서 야권 후보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공세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 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은 사건 초기 천안함이라는 안보 이슈에 대해 스탠스를 잘못 잡았다가 방향을 선회할 타이밍도 잃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시점에 와서는 무조건 ‘믿을 수 없다’고 치고 나가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직후 박지원 당시 정책위의장 등이 성급하게 ‘북한 무관론’을 폈다가 ‘실점(失點)’했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신중론으로 돌아선 바 있다. 민주당으로선 선거 막판 안보 이슈의 부각을 차단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 공격으로 결론 나고 그런 결론이 국제사회에서도 받아들여져 반박할 만한 논리가 궁색해지는 상황이 된다고 해도 결국 책임은 현 정권에 있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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