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가양동 지하철 9호선 가양역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요즘 아침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환하게 웃는 아기 얼굴을 여기저기서 마주치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곳마다 걸려 있는 ‘웃는 아기 사진’은 강서구에 있는 미즈메디병원이 내건 광고판이다.
서울지하철 9호선 역사와 열차에 내걸린 독특한 광고들이 이용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시설물의 위치나 제품의 홍보 내용 등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다른 광고와 달리 정보는 최소화하고 이미지를 부각한 광고가 많다. 지하철 이용객들은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미지가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 같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는 것.
○ 미소를 짓게 하는 이색 광고
“지하철을 타면 광고에 쓰여 있는 문구를 자세히 읽지 않게 되더군요. 그래서 글자를 최소한으로 줄인 이미지 광고가 더 낫다고 판단한 거지요.” 이원흥 미즈메디병원 원장의 말이다.
서울지하철 9호선 일부 역에 걸린 이색 광고들이 지역주민의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병원 이름 외에 아무런 정보를 써넣지 않은 채 웃는 아기 얼굴만 걸어놓은 가양역의 미즈메디병원 광고(위)와 수십 년간 같은 곳에서 살아온 지역주민들을 모델로 활용한 흑석역 동부건설 광고(아래). 사진 제공 미즈메디병원·동부건설
실제 이 광고 시안에는 ‘Be happy(행복하세요)’라는 문구와 미즈메디병원 상호 외에는 다른 내용이 전혀 없다. 그래도 광고 효과가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병원 측 설명. 지하철역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이기 때문에 상호와 그림만 봐도 출산, 태아전문병원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는 것.
이 병원 김승연 홍보실장은 “2주 정도 지나자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는 산모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며 “다른 일로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는데 광고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번 광고에 등장한 아기 사진은 이미지 판매 업체에서 구입한 것이다. 광고를 만들 시간이 촉박해 직접 촬영하지 못한 것. 병원 측은 2차 광고 때에는 이 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이 웃는 사진을 직접 찍어 걸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흑석역 벽에 걸린 광고모델들도 연예인이나 유명인사가 아니다. 다만 흑석동 주민들은 다 아는 ‘우리 동네 유명인사’다. 50년간 가구점을 운영한 주인, 30년간 한자리에서 약국을 운영한 할아버지, 어릴 때부터 쭉 같은 동네에서 큰 소꿉친구 여대생들…. 광고를 기획한 동부건설 측은 “흑석동이 뉴타운으로 지정되면서 옛 모습이 사라져간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주민이 많았다”며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흑석동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 광고를 제작하기로 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광고모델들은 일약 ‘스타’가 됐다. 28년째 흑석시장에서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김미숙 씨(52·여)는 “광고가 나가고 나서 얼굴을 알아보고 찾아오는 단골이 더 늘었다”며 “그동안 동네 모습이 많이 바뀌었고 이사를 간 사람도 많다며 섭섭해하던 주민들이 특히 반가워했다”고 말했다.
○ 깔끔한 광고판과 지하철역
9호선은 설계할 때부터 선진국 못지않은 깔끔한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공항철도와 바로 연결되고 김포공항, 강남권을 잇는 노선이어서 외국인 승객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현재 운행하는 열차는 모두 4량짜리로 역사가 다른 노선에 비해 좁아 다양한 업체의 광고가 걸릴 경우 혼잡해 보일 우려가 있었다. 이 때문에 9호선 운영사인 ‘메트로나인’은 한 역에 한 개 업체의 광고만 걸기로 했다.
광고주들은 다른 지하철 노선과 달리 9호선에서는 한 역사에 한 개 기업의 광고만 내걸 수 있기 때문에 광고 디자인을 깔끔하게 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9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도 기존 광고와 차별화되면서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라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미즈메디병원 김 실장은 “우리가 내건 광고를 모든 이용객이 반복적으로 볼 수 있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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