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대한민국 인재상 수상 두 학생 “내 창의성의 비결은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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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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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무심코 보지 않는다… 꽂히면 끝까지 파고든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주부 박모 씨(40·서울 서초구 반포동)는 최근 아이가 교육청 영재교육원에 지원했다가 탈락하자 무척 실망했다. 영재성 검사에 출제된 ‘평소 쓰는 실내화의 단점을 보완한 실내화를 만들라’는 문제에 아이가 쓴 답이 너무 평범한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아이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바닥에 고무를 덧댄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아이가 전교 1, 2등을 다투는 최상위권이지만 유독 창의적인 사고에 약하다”면서 “공부만 잘하는 아이보단 남다른 창의성과 기발함이 돋보이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 입시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거나 확대됨에 따라 단순히 성적만 좋은 학생보단 창의적인 사고력을 가진 학생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창의성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창의성은 어떻게 길러야 하며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를 두고 학생과 학부모는 막막하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창의재단이 심사를 통해 선발하는 ‘대한민국인재상’ 수상자들에게 주목할 만하다. 21세기를 이끌 창의적 인재에게 주는 이 상의 수상자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의 요건을 읽을 수 있다. 2009년 수상자 중 로봇, 컴퓨터과학 분야의 윤필립 군(18·경기 정발고 3)과 창의력, 환경 분야의 신희선 양(19·제주 신성여고 3)을 통해 창의성의 실마리를 찾아보자.

1 창의성은 상식을 깨는 생각이다!

지난해 1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한국학생창의력올림픽 본선. 예선을 통과한 108개 팀이 저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연극을 준비했다. 연극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제한된 예산으로 참가자가 직접 소품을 만들 것 △소품 하나를 두 가지 이상의 용도로 사용할 것 △하나의 의상을 등장인물 두 명이 입을 것 등이다. 제시된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얼마나 창의적인 스토리를 선보이는지가 관건.

신 양이 속한 파워브레인팀은 ‘미신’이라는 주제로 코딱지 미신을 믿는 제주무당이 어머니와 함께 도깨비에 맞서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구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한국적이고 지역적인 특수성을 살리면서도 재미있고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까다로운 조건을 맞추기 위해 집의 문지방으로 썼던 나무는 ‘정낭’(제주에서 집의 대문이 놓일 자리에 대문 대신 가로로 놓는 나무)으로, 무당집 소품으로 썼던 돌은 돌담길의 석등으로 재사용했다. 신 씨가 속한 팀은 은상을 수상해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 출전권을 따냈다.

상식을 깰 수 있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신 양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것 같다”면서 “창의력대회에선 평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물이 어떻게 다르게 쓰일 수 있을지 생각했던 습관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윤 군도 평상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것을 남다르게 생각하려고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그 이면을 궁금해 하는 것이 윤 군이 말하는 창의성의 핵심이다. 어릴 적 윤 군은 탁상시계와 손목시계에 어떤 부품이 쓰였는지,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해체해 본 경험이 많다. 사람이 사용할 때와 사용하지 않을 때를 감지해 작동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보면 ‘이건 어떻게 만들었을까’ 늘 궁금했다.

2 창의성은 ‘몰입’을 먹고 자란다!

보통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할 뿐 컴퓨터 자체를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윤 군은 컴퓨터란 대상 자체에 호기심이 많았다. 좋아하는 컴퓨터를 더 잘 다루고 싶어 초등 2학년 때부터 딴 컴퓨터 관련 자격증만 14개. 중학교 때는 사용하는 컴퓨터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인 C++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했다.

초등 6학년 때 학교에서 실시한 영재교육프로그램에서 윤 군은 처음 로봇을 만들었다. 윤 군이 만든 로봇은 바닥에 그려진 주행선을 센서로 감지해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라인 트레이서’. 직접 완성한 로봇이 검은색 길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후 로봇에 푹 빠진 윤 군은 로봇을 창작하는 실력이 탁월해졌다. 중3 때 열린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창작로봇부문 주제는 ‘사람과 동식물을 이롭게 해주는 로봇’이었다. 윤 군은 지뢰를 밟아 다친 사람들에 관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뢰를 탐색해 제거하는 로봇을 만든 것. 대회 주제가 제시된 직후부터 5개월 동안은 매주 5∼6시간 로봇 제작에 시간을 쏟았다. 로봇에 캐터필러(여러 개의 강판 조각을 벨트처럼 연결해 차바퀴로 사용하는 것)를 달아 요철이 심한 도로나 험한 지형에서도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색깔로 지뢰를 감지해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밤새워 만든 로봇으로 윤 군은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무섭게 몰입하는 윤 군. 중3 때부터 그는 청소년과학교육연구회에서 전문교사의 지도로 로봇과 전자회로에 대해 심층적으로 공부했다. 이는 전국학생로봇경진대회 금상(2006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금메달(2008년) 등의 결실로 이어졌다. 윤 군은 “좋아하는 분야에 관해 모르는 것, 새로운 것, 궁금한 것은 끝까지 알아내야 직성이 풀린다”면서 “남들과 똑같이 공부해선 창의력이 생길 수 없다”고 말했다.

3 창의성은 ‘행동’이다!

신 양은 새로운 생각이나 목표가 떠오르면 일단 행동으로 옮긴다. 학생과학탐구올림픽 과학동아리 발표대회 전국 동상(2008년),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 한국대표(2009년), 유니세프 세계청소년 기후변화포럼 대한민국대표(2009년) 등 화려한 이력은 적극적인 행동의 결과다.

고교 때는 교내 과학동아리 ‘샛별과학반’에서 활동하며 환경과 관련된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다. ‘지구온난화가 제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는 지구온난화로 한라산의 제주조릿대(볏과 대나무의 하나)가 서식하는 구간이 북상해 멸종위기식물의 자생지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연구를 위해 신 양은 책과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고 제주도 환경정책과장, 환경연합 활동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한라산에 올라 직접 조릿대를 캐기도 여러 번. 이렇게 쓴 과학보고서는 한국학생환경올림피아드에서 동상을 받았다.

신 양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노력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어도 드러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보여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활동으로 포트폴리오를 쌓는 것이 창의성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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