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피맛골 청일집 ‘65년 추억’ 박물관에 고스란히 보존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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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이전하는 最古 식당
그릇-메뉴판-낙서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증

간판에는 ‘55년 전통’이라고 써 있지만 이 간판이 걸린 때는 벌써 10년 전인 2000년. 1945년부터 서울 종로구 청진동 골목을 지켜온 피맛골 최고(最古) 식당 ‘청일집’이 6일 두 군데로 나뉘어 이사를 한다. 65년 전통의 맛은 바로 옆 현대식 건물인 ‘르 메이에르 빌딩 종로타운’으로, 향수를 간직한 가게 모습은 서울역사박물관으로 각각 옮겨간다.

“내가 주인 노릇을 하던 공간을 후손들도 영원히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하지.”

4일 만난 청일집의 ‘사모님’이자 주방장인 임영신 씨(61)는 65년을 지켜온 터전을 박물관에서나마 영원히 보존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피맛골 생활사 보존사업의 일환으로 청일집 탁자부터 그릇, 메뉴판, 벽면 낙서까지 거의 모든 것을 기증받아 영구 보존하기로 했다. 가지고 갈 것은 뚝배기 등 식기 일부와 식재료 정도.

가게 바로 앞에 교보빌딩이 들어서기 전인 1970년대, 청진동 골목은 모두 청일집 같은 작은 식당들로 가득 찬 먹자골목이었다. 낙지로 유명한 집, 메밀국수로 유명한 집, 또 하나의 ‘원조’ 청진동 해장국집…. 지금은 이들 가게가 모두 르 메이에르 빌딩으로 자리를 옮겼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청일집도 바로 옆 건물까지 철거되면서 어쩔 수 없이 새 가게로 옮기게 됐다.

“오래되고 맛있다고 소문나면서 유명인사도 줄줄이 왔어. 생각해보면 워낙 많이 찾아와서 그런지 별로 친절하진 않았던 것 같네.” 웃으며 말하는 임 씨.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회의원 시절에는 자주 찾아왔다. 고 최진실 씨는 기르는 애완견에게 준다며 감자탕에 들어 있는 뼈를 챙겨가기도 했단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감독은 손기정 옹이 타계하기 전 이 가게의 구석 테이블에 함께 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사 간다고 해 놓고 (새 가게로) 들고 갈 건 거의 없네.” 연방 웃는 얼굴이었지만 주방을 둘러보는 임 씨의 표정에서는 섭섭함도 묻어난다. 주말에만 들르는 지방 손님이나 해외에서 온 손님이 많아 주말에도 가게문을 닫지 않던 청일집이지만 6, 7일에는 얼마 안 되는 이삿짐을 싸기 위해 잠시 영업을 쉰다. 새 가게는 8일부터 열 예정이다. 금요일인 5일 임 씨는 65년 역사의 1막을 마무리할 ‘구(舊)’ 청일집의 마지막 빈대떡을 부친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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