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에 울고 웃는 이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5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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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신길 6동에서 동네 해결사 '홍반장'으로 통하는 포크레인 운전기사 김진성 씨(39)는 폭설이 쏟아진 4일 자신의 2t짜리 포크레인을 끌고 나와 지하철 7호선 신풍역 주변 인도와 차도에 쌓인 눈을 치웠다.

사방이 뻥 뚫린 포크레인 운전석에 앉아 오전 11시부터 8시간 동안 제설작업을 하느라 김 씨는 속옷까지 눈에 흠뻑 젖었다. 김 씨에게 감사의 표시로 인근 포장마차 주인은 김치찌개를 끓이고 횟집에서는 장어를 구워 조촐한 회식자리를 마련했다. 이처럼 서울에 내린 사상 최대의 폭설 속에서 오히려 이웃의 정이 빛난 사례들이 많았다.

서울 노원구 월계1동 비탈길에서도 50~60명이 나와 자발적으로 눈을 치웠다. 채현경 씨(37·여)는 "평소에도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 들 정도로 경사가 심한 언덕길이라 눈이 오면 아예 차가 다닐 수 없다"며 "눈만 오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제설 작업을 벌인다"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주민센터에서 홍릉공원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비탈길은 4일 오후부터 막걸리 배달 차량이 다닐 정도로 깨끗이 치워졌다. 이곳을 깨끗하게 치운 것은 마을 주민들이었다.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임창길 씨(55)는 "눈이 오면 누가 치우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 집 마당 쓰는 마음으로 도로를 치운다"고 말했다.

독거노인 등이 많이 살아 눈을 치우기 어려운 동네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나서서 눈을 치워주기도 했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 85번지 달동네에는 언덕 곳곳에 계단이 많아 눈이 내리면 다니기가 쉽지 않지만 주로 독거노인이 살고 있어 눈을 치울 사람이 없다. 5일 오후 2시경 마포구 자원봉사센터에서 모집한 성인 및 청소년 자원봉사자 30여 명이 모여 계단과 언덕의 눈을 말끔히 치웠다.

반면 눈 치우는 문제로 시내 곳곳에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5일 집 앞의 눈을 치우는 문제로 시비가 붙어 서로 싸운 혐의로 강모 씨(56·여)와 김모 씨(72)를 각각 상해와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두 사람은 4일 오후 3시 반경 함께 집 앞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김 씨가 눈을 치우다 말고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을 병원에 데려다 주러 가야한다"며 일어서자 강 씨가 "눈 치우기 싫어 핑계 대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시비 끝에 강 씨는 눈을 치우느라 들고 있던 쓰레받기를 김 씨의 얼굴에 휘둘렀다. 화가 난 김 씨도 강 씨의 얼굴을 때리는 등 주먹다짐을 벌였다.

치운 눈을 자기 건물 앞에 버렸다는 이유로 싸움을 벌이다 나란히 경찰 조사를 받은 이웃들도 있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4일 오후 5시 10분경 서울 중구 명동에서 눈을 치우다가 시비가 붙어 서로 싸운 혐의로 경비원 박모 씨(40)와 의류업을 하는 이모 씨(48·여)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눈을 쓸고 있던 박 씨에게 맞은편 건물에 있던 이 씨가 "왜 우리 집 앞에다 눈을 쓸어 모으냐"며 항의하자 박 씨가 이 씨의 목을 때렸고. 이 씨도 들고 있던 삽으로 박 씨를 위협한 혐의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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