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광견병 서울 잠입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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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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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방대’ 동행 취재기
어묵 등 미끼에 백신 넣어 너구리 등 이동길목에 살포
예방약 총 2만5000개… “집에 가져가지 마세요”

서울대 수의대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김기용 씨(29)와 오승용 씨(28)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 도착한 8일 오후. ‘광견병 예방대원’인 이들은 이날 서울로 침투하는 광견병 바이러스를 막는 임무를 띠고 북한산에 올랐다. 이들은 “지난달 9∼13일 뿌려둔 광견병 미끼 예방약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북한산-양재천 등에 ‘미끼 백신’

등산을 하던 오 씨가 가로 5cm, 세로 3cm 크기의 ‘미끼 예방약’을 하나 꺼냈다. 코끝에 가져가자 어묵 냄새가 났다. 오 씨가 예방약 표면을 벗기고 잘라내자 작고 하얀 비닐용지가 나왔다. 용지 겉면에는 ‘Rabies Vaccine(광견병 바이러스 백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 씨는 “야생동물이 어묵 냄새를 맡고 이것을 먹으면 자연스레 백신 접종을 받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라며 “용지 속 빨간색 액체가 바로 광견병 백신”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은 경기 북부 지역과 강원도에서 매년 발생하는 광견병의 확산을 막으려고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광견병 바이러스가 1993년 다시 발생한 뒤 이후 점차 남하하고 있기 때문. 2006년에는 서울에서도 1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넘어온 너구리 등 야생동물들이 광견병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옆에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연구원들이 비닐봉투에 넣은 광견병 미끼 예방약을 내려놓았다. 사진 제공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 옆에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연구원들이 비닐봉투에 넣은 광견병 미끼 예방약을 내려놓았다. 사진 제공 서울대 수의대 야생동물의학실
광견병 바이러스는 주로 너구리, 여우 등 야생동물의 침이나 점막 속에 존재한다.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가 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동물에게 물리면 사람에게도 전염돼 공수병(恐水病)을 일으킬 수 있다.

서울시와 서울대 수의대는 서울을 둘러싼 산과 하천을 따라 미끼 예방약 2만5000개로 ‘광견병 방어선’을 촘촘히 구축했다. 북한산, 도봉산 등지와 남쪽의 양재천, 탄천 등 야생 너구리가 다닐 만한 길목에는 어김없이 미끼 예방약을 뿌렸다. 야생 너구리가 자주 등장하는 우거진 숲이나 물이 풍부한 계곡 능선도 방어선 구축에는 안성맞춤. 오 씨와 김 씨도 이런 지역을 골라 반경 100m마다 1곳씩 정해 예방약을 30개씩 뿌린 뒤 나중에 위치를 추적할 수 있도록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수신기에 입력해 뒀다. 이날 오 씨가 손에 든 GPS 수신기에도 어김없이 예방약을 뿌린 지역이 좌표로 찍혔다.

○ “들고 가지 마세요”

이들은 너구리가 겨울잠을 자는 12월에 예방약을 회수해 회수율을 분석한다. 이달 7일부터 1주일간 회수에 나선 결과 2만5000여 개 중 1000여 개만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너구리가 겨울잠에서 깨며 식욕이 왕성해지는 2월에는 다시 한 번 방어선 구축에 나선다. 오 씨는 “너구리나 야생동물이 사라진 예방약 모두를 먹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일단 이렇게라도 방어선을 구축해 놓아야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좌표를 따라가다 보니 ‘광견병 예방약이니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나왔다. 경고문 밑에는 아까 오 씨가 보여줬던 예방약이 10여 개 남아 있었다. 오 씨는 “너구리가 먹어 치운 것일 수 있지만 종종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에게 먹인다고 미끼 예방약을 가져가는 등산객도 많다”며 “광견병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니 가져가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광견병 바이러스 백신은 손으로 만졌을 경우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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