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0시 반경. 충남 홍성군의 인적이 드문 전원주택에서 폭력조직 ‘홍성식구파’의 행동대장 한모 씨(33)가 폭력배 생활을 청산하려는 하급조직원 A 씨(25)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며 위협했다. 한 씨는 A 씨에게 흉기를 쥐여주며 왼손 새끼손가락을 스스로 자르라고 강요했다. ‘충성 맹세’의 의미였다. 목숨을 위협당한 A 씨는 흉기로 자신의 손가락을 내리쳤다.
A 씨는 고교 2학년이던 2002년경 홍성식구파에 가입했다.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에 따르면 이 폭력조직은 2000년 말 20여 명 규모로 결성돼 도박장, 유흥업소 등을 운영하고 조직폭력을 일삼아 오다 2001년 두목 등 간부 8명이 구속되면서 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였다. 하지만 2007년 3월경 두목을 비롯한 홍성식구파 주모자들이 속속 출소했다. 홍성식구파가 조직을 재정비하던 중 일부 조직원의 이탈 움직임이 있자 행동대장 한 씨는 몸소 ‘조직의 기강을 세우겠다’며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을 잘랐다. 이후 부하들에게도 충성의 맹세로 똑같은 방식의 신체 훼손을 요구하며 협박과 폭행을 일삼았다. 조직을 떠나려는 하부조직원을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60대씩 때리기도 했다.
A 씨는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가족과 함께 살겠다며 타지에서 5개월을 보내다 8월 말 홍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폭력조직의 마수는 끈질겼다. 한 씨 등은 조직을 탈퇴하려는 하급조직원들에게 A 씨를 본보기로 삼으려고 부하 3명을 이끌고 A 씨를 자신의 숙소로 납치했다. A 씨는 협박에 못 이겨 흉기를 두 번이나 내리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랐다. 한 씨 등의 폭행을 견디다 못한 다른 하급조직원 6명과 A 씨는 경찰에 홍성식구파를 신고했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제가 죽을 각오를 하고 신고한 것은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고 제 가족과 오순도순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폭력조직은 철없던 내가 생각한 멋있는 세계가 아니었다”며 “가입했던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4일 A 씨의 손가락을 훼손하고 구성원을 상습 폭행한 혐의(상해 및 폭행)로 행동대장 한 씨와 조직원 강모 씨(31) 등 7명을 구속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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