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노지현]백신 접종 재예약 사태 부른 오락가락 보건행정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돌 지난 딸아이의 독감 접종 때문에 21일 동네 의원을 찾았다. 소아과 의사는 “아직 신종 인플루엔자 접종 신청 안 했어요? 올해 아이 접종 못 시키겠는데요”라며 접종 신청을 권했다. 의사는 ‘무슨 엄마가 이렇게 느려 터졌나’라는 눈빛으로 기자를 쳐다봤다.

6개월 이상∼3세 미만의 영·유아 접종 예약은 23일부터 시작된다. 그 의사는 예약이 시작되기 전에 손님을 확보해 놓으려고 먼저 예약을 받겠다는 계산이었던 것이다. 동네의원 의사는 “나중에 정부가 예방접종도우미사이트를 열면 많은 사람이 일시에 몰려들어 원하는 시간대에 예약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예약이 실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18일 3세 이상 미취학 아동의 인터넷 예약시스템이 개통됐다. 동네의원들은 그 전에 예약을 받아놓았다. 어떤 의원은 수백 명의 예약자 명단을 확보하기도 했다. 정부가 예약시스템을 열기를 기다리던 많은 부모가 분통을 터뜨렸다. 본보가 17일 이런 문제점을 보도한 뒤 여러 매체들이 뒤이어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자 보건당국은 ‘동네의원 예약보다 인터넷 접수가 우선’이라는 방침을 세웠다.

이번에는 동네의원에서 예약했던 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부 부모는 의원들로부터 “미안하지만 예약한 그 날짜에 못 맞추겠다”며 20일가량 더 늦는 날짜를 통보받았다. 부모들은 부랴부랴 다시 인터넷 예약으로 몰렸다. 급기야 한 명이 두 번 예약되는 ‘중복예약’ 사태가 발생했다. 보건당국은 결국 후순위로 밀린 접종 예약에 한해 재예약을 받기로 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보건당국과 동네의원은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왜 지침도 떨어지지 않았는데 동네의원이 예약을 받느냐”고 말하고, 동네의원은 “정부 지침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한 것이다”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선량한 시민이다. 보건당국과 동네의원의 어이없는 핑퐁 때문에 3세 이하 접종 때도 같은 상황이 벌어질 조짐을 보인다.

보건당국은 지금이라도 “동네의원의 예약은 실효성이 없으니 인터넷 예약을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동네의원 역시 상술로 환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백신접종을 받지 못할까봐 미리 동네의원을 찾아간 부모 마음이나, 오늘 오전 9시 웹사이트가 열리자마자 클릭하려고 두 눈 부릅뜨고 컴퓨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말이다.

노지현 교육복지부 isityou@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