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태국 방콕의 한 호텔. 로비 한 구석에서 폭력배 두 명을 데리고 나타난 허모 씨(40)가 문모 씨(49) 앞을 가로막고 섰다. 여행사를 하는 최모 씨(52·여)에게 빌린 돈 450만 밧(약 1억5000만 원)을 문 씨가 갚으라는 말이었다. 문 씨는 태국에서 사업 수주를 원하는 한국 기업과 태국 주정부를 연결해 주고 커미션을 받는 브로커로 당시에는 쓰레기를 압축해 고체연료를 만드는 공장 건설사업을 주선했다.
태국 교포들 사이에서 ‘한다면 하는 사람’으로 이름난 허 씨가 대신 돈을 받겠다며 자신을 찾아오자 문 씨는 당황했다. 일단 위기에서 벗어나려 “다음 날 아침까지 갚겠다”고 둘러댔다. 허 씨는 “아침까지 같이 있겠다”며 벼르고 나섰다. “옷이라도 챙겨오게 해 달라”며 집으로 간 문 씨는 양말 서랍장에서 7년 전 태국 현지인에게 산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찾았다. 혹시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구입한 총이었다. 그는 총을 옷 속에 감추고 허 씨와 함께 다시 호텔로 향했다.
감금 여섯 시간째. 문 씨는 하루 만에 당장 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가족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허 씨의 협박은 빈 말로 들리지 않았다. 문 씨는 살인을 결심했다. 같이 있던 폭력배들이 졸고 있는 사이 문 씨는 침대에서 자고 있던 허 씨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허 씨의 머리를 관통했다. 호텔을 빠져나온 문 씨는 캄보디아로 떠나 호텔과 병원을 돌며 숨어 지냈다. 인터폴에는 “살인 혐의자 문 씨를 잡으면 한국으로 넘기라”는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지난달 29일 캄보디아 경찰은 문 씨가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투숙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문 씨를 검거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3일 살인 혐의로 문 씨를 구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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