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끌고가 채증 카메라 빼앗은 민노총 직원 영장기각 논란

  • 입력 2009년 8월 8일 02시 59분


판사 “채증 당하니까 증거 없애려고 한 일”
경찰 “공무집행 어떻게 하라고… 이해 못해”

집회 현장에서 채증을 하던 경찰관의 카메라를 빼앗은 혐의로 붙잡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사무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돼 경찰이 반발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6일 미디어법 반대 집회에 참석해 공무수행 중이던 경찰관의 채증장비를 뺏은 혐의로 민주노총 서울지부 사무원 손모 씨(29)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손 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4시 50분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미디어법 반대 집회에서 채증활동을 하던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김모 경사를 군중 속으로 끌고가 칼로 김 경사의 채증용 카메라 줄을 끊고 카메라(810만 원 상당)를 빼앗은 혐의(특수강도 등)를 받고 있다. 언론노조 조합원 등 500여 명이 참석한 이 집회에서 김 경사는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발길질 등 폭행을 당하고 70m가량 끌려 다녀 무릎 등에 찰과상을 입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손 씨는 2007년 8월부터 민주노총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며 용산 철거민 참사 관련 집회 등 불법 시위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서울남부지법 한경환 판사는 7일 손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한 판사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거가 일정하고 직접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한 판사는 이어 “채증을 당하니까 증거를 없애려는 생각에서 손 씨가 몸싸움 정도는 벌였겠지만 (집회 현장에서) 당연히 예상되는 정도”라며 “(또 다른 채증 요원이) 채증을 하고 있어 김 경사의 카메라가 유일한 채증 방법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영장 기각에 대해 경찰은 “이해할 수 없다”며 관련 증거를 보완해 영장을 다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정당한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관의 카메라를 빼앗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해당 경찰관이 아닌 다른 경찰관이 채증을 했다고 해서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앞으로 공무집행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보통 시위대가 카메라를 뺏더라도 사진을 지우고 돌려주는데 이를 빼앗아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이를 소유할 의사가 있었다는 증거”라며 “손 씨는 경찰조사에서 카메라를 어떻게 처분했는지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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