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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7월 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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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공 다니던 이영규 씨
‘비정규직 여야 합의 결렬되었습니다.’ 1일 오전 4시, 한국토지공사 판교사업본부 소속의 비정규직 근로자 이영규(가명·40) 씨는 눈을 뜨자마자 전날 밤 회사에서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확인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가슴 졸이며 기대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날 이 씨는 하루 종일 뉴스를 확인하며 국회의 비정규직 관련법 처리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10)을 재우느라 오후 10시 반 함께 잠이 들어버렸다. 이 씨는 멍하기만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래도 몸을 일으켰다. 아침밥을 짓고 찌개를 끓였다. 몇 달째 해오던 일이라 익숙하다. 4월에 유방암 수술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아내(38)를 대신해 집안일을 해오고 있는 터였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매월 150만 원을 벌던 아내는 올해 1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회사를 그만뒀다. 작은 회사라 병가나 휴가를 낼 상황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이 씨의 월급은 120만 원. 이제 이마저도 못 받게 됐다. 아내의 방사선 치료비로만 매일 4만 원이 나간다. 병원비로 얼마가 필요한지는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 미리 알아봐야 뾰족한 수도 없고, 걱정만 더 되니까.
평소보다 일찍 회사(경기 성남시 분당구)로 출근한 이 씨는 업무 관련 자료를 인계했다. 5월경 언질을 받고 틈틈이 준비해 둔 터라 오전 10시에 인계는 끝났다. 무거운 분위기에서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3년 10개월간 정들었던 회사를 나왔다. “회사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고맙지요. 비정규직은 연간 휴가가 12일 정도인데, 아내 수술로 경황이 없을 때 휴가도 더 갈 수 있게 배려해줬습니다. 병원비에 보태라며 도와주신 분도 많고요.” 정치권을 향해서는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한나라당에 표를 던진 게 후회됩니다. 너무나 무능한 모습에 화가 납니다.”
2일부터 당장 일을 찾아야 한다. “일단 올해 말까지 판교신도시 공사의 일거리가 남아 있어 알아볼 생각입니다. 막노동도 좋고요. 대리운전이든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할 겁니다.”
아내와 양가 부모님에게는 해고 소식을 말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말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내는 치료를 받느라 신문, TV를 안본 지 오래됐습니다. 알아봐야 건강에 도움도 안 되고요.”
성남=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