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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6월 28일 22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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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담담했다. 1999년 6월 30일 유치원생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 씨랜드 화재 사고' 때 큰 아들 김도현 군(당시 6세)을 잃은 전 필드하키 여자국가대표 김순덕 씨(43)는 그해 겨울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다. 김 씨는 한국을 떠나면서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때 활약한 공로로 받은 체육훈장 기린장과 국민훈장 목련장도 정부에 반납했다. 아이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항의와 원망의 표시였다.
"단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어요." 김 씨는 뉴질랜드로 돌아간 첫 해를 그렇게 회상했다. 남편은 술을 마시는 횟수가 늘었고, 둘 째 태현이는 이상 행동을 해 미술치료를 받아야 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죄인이 된 것 같았고, 남편은 도현이의 물건이나 태현이의 얼굴만 봐도 눈물을 흘렸어요. 누가 울기 시작하면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김 씨 뿐 아니라 씨랜드 참사는 당시 아이를 잃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딸 혜지(당시 5세)를 잃은 김청훈 씨(50)는 "당시 식당에서 일했는데 손님들 중 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며 "좋은 일도 아니고 날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때마다 너무 괴로워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후 1년도 안 돼 직장을 옮겼다.
딸 수나(당시 5세)를 떠나보낸 허경범 씨(51)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딸의 시신을 본 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집에서는 수나의 물건을 보고 동생을 찾아달라는 아들의 칭얼거림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과 가족이 이들의 아픔을 치유해줬다. 사고 후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던 김순덕 씨 집에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면서 웃음을 되찾았다. 2001년 12월 크리스마스 전날에 태어난 아들 시현이는 도현이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김 씨는 "가톨릭 신자인 우리 부부가 '환생'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식당을 찾은 한 스님이 '간절히 바라면 죽은 사람이 그 집에 다시 태어나는 수도 있다. 도현이랑 시현이도 그런 모양'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다른 가족들에게도 새로 태어난 아이가 큰 힘이 되었다. 당시 아이를 잃은 19가족 중 14가족이 사고 후 새 아이를 얻었다. 아들을 잃고 두 명의 딸을 얻은 가족도 있고, 사고 후 난폭해진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멀어졌던 한 아버지는 새로 막둥이 아들을 얻으면서 마치 다시 태어난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김 씨는 전했다. 하지만 한 어머니는 새로 아이를 낳고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까지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고, 아이 생각에 거의 매일 눈물짓는 아버지도 있다고 한다.
김 씨는 "모기향으로 불이 났다는 정부의 해명을 부모들은 아직도 납득할 수 없다"며 "사고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탓인지 부모들은 아직도 어디에서 아이가 살아 돌아올 것만 같다는 생각을 늘 한다"고 말했다.
어린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사고 10주기를 맞아 29일 사고 발생 후 처음으로 현장에 분향소를 차리고 합동위령제를 지낸다. 김 씨 부부는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 한다. 뉴질랜드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 씨는 "지난해부터 도현이 기일에 주변 자폐아 가족들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도현이를 잃고 세상을 힘들고 억울하게 사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됐다"며 "도현이는 참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갔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도현이를 만났을 때 미안한 마음 없이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어 열심히 산다"고 말을 맺었다.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