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속에 신사임당’ 5만원권 유통 첫날 표정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5만 원권이 처음으로 시중에 풀린 23일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본점 현금수송장에서 한은 직원이 취재진에게 5만 원권 새 지폐를 선보이고 있다. 직원이 손을 얹고 있는 10kg 상당의 비닐에는 5만 원권 1만 장(5억 원)이 들어 있다. 홍진환 기자
5만 원권이 처음으로 시중에 풀린 23일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본점 현금수송장에서 한은 직원이 취재진에게 5만 원권 새 지폐를 선보이고 있다. 직원이 손을 얹고 있는 10kg 상당의 비닐에는 5만 원권 1만 장(5억 원)이 들어 있다. 홍진환 기자
“대금지불 간편” “거스름돈 불편”

#1. 김영희 씨(34·서울 마포구)는 23일 저녁 전셋집 가(假)계약을 하면서 5만 원짜리 지폐 20장을 집주인에게 건넸다. 예전 같으면 1만 원짜리 100장을 묶은 두툼한 돈다발을 준비해야 했겠지만 대금 지불이 훨씬 간편해졌다.

#2. 동아일보 기자가 이날 오후 택시를 탄 뒤 요금이 3000원쯤 됐을 때 내리면서 5만 원권을 건네자 운전사인 이진혁 씨(45)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씨는 “앞으로 1만 원권도 넉넉히 준비해야겠다. 거스름돈 부담이 만만치 않겠다”고 말했다.

36년 만의 고액권인 5만 원권이 23일 시중에 풀리면서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지폐 휴대가 편리해진 점과 소장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 반면 일부는 예상치 못한 불편을 호소하기도 했다.

○ 밤새우며 신권 기다린 사람들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6시부터 금융회사 본점을 비롯해 한은과 입출금 거래를 직접 하는 은행 지점에 5만 원권 3292만4000장(1조6462억 원)을 공급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한은 본점의 발권국 화폐교환 창구에는 앞 일련번호 지폐를 순서대로 나눠주지 않는다는 사전 홍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5명이 밤새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렸다. 22일 오후 9시부터 밤을 새우며 한은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는 조종국 씨(66·일용직)는 “앞 번호를 순서대로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지만 5만 원권을 한은에서 처음 받고 싶어 밤을 새웠다”고 말했다. 한 시민은 오전 2시경 100만 원이 든 가방을 날치기 당했다가 함께 줄을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이 범인을 잡아줘 가방을 되찾기도 했다.

은행 문이 열린 오전 9시부터 5만 원권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은행을 찾기 시작해 오후 들어서는 일부 은행 지점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에 긴 줄이 생기기도 했다. 외국계 은행에 근무하는 황유미 씨(26)는 “발행 첫날 빠른 번호의 지폐를 받아 놓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5만 원권 인출이 가능한 ATM은 지점마다 1대밖에 없고, 그나마 일부 영업점에는 새 ATM이 설치되지 않아 고객들이 새 돈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 은행 밖에선 우려 반, 기대 반

일각에서는 5만 원권 출시로 화폐가치가 떨어져 축의금이나 세뱃돈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회사원 김수연 씨(27·여)는 “축의금을 기본적으로 5만 원은 내야 할 것 같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황모 씨(30·여)는 “아직 익숙지 않아 그런지 5만 원권은 화폐라기보다 상품권 같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유통업계는 신권 출시로 소비가 늘어날 것을 기대했다. 롯데백화점은 26일 핸드백, 샌들, 원피스 등의 패션 소품을 5만 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26∼28일 매일 선착순 200명에게 5만 원권 지폐를 교환해주며, 여성용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세트를 5만 원에 판매할 계획이다. 이재진 신세계 강남점 마케팅팀장은 “지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많아져 고객들의 씀씀이가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은 10만 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점차 사라지면서 수표 발행 및 보관비용 등이 감소함에 따라 연간 3200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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